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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의 다양성
 
김해빈 시인/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9/01 [13:58]


별이 총총한 8월 달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마을을 밝히고 둥글둥글한 하얀 박 덩이가 마루 밑에까지 빛을 던지는 풍경은 50대 후반까지는 기억하지만 그 이후 세대는 경험하지 못한 우리의 농촌 정경이었다. 그런 박이 밤이슬에 단단하게 익으면 사다리 딛고 지붕에 올라 커다란 박을 따는 날은 장정이 동원되곤 했다. 마루나 마당에 멍석을 깔고 톱으로 어른들이 박을 탈 때는 쓱싹쓱싹 톱질에 저절로 흥이 났고 가마솥에 박을 삶아 씨방 부분은 다 도려내고 연한 박속은 긁어내어 회로 무쳐 먹기도 했다.

50~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박은 살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필수품이었다. 물바가지, 주전부리 바가지, 바느질 바가지, 똥바가지, 탈바가지 등등 세간살이 전반에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어서 어느 집이나 박을 심었다.

박은 실용적인 면에서 우리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지만 식용 면에서도 영양이 우수하여 어린 박은 볶음 나물, 맑은 장국, 들깨탕으로 해 먹었고, 또 박을 썰어 말려서 박고지를 만들어뒀다가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친숙한 음식 중의 하나였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도 그 맛에 놀라 옛이야기에도 등장하는 훌륭한 음식 재료다.

이 밖에 또 중요하게 한자리를 차지하는데 주술적인 면이다. 박은 소리다. 재질이 나무와 비슷하지만 가볍고 단단하여 깨질 때도 소리가 요란하다. 그것을 이용하여 민속적인 풍습에도 사용되었다. 장례식장이 없던 시절에는 초상이 나게 되면 모든 절차를 집안에서 행하여졌고 시신을 입관하여 상여에 옮기는 과정에서 관을 든 장정들이 마루에서 마당에 내려서는 순간 마루 밑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밟아 큰 소리로 귀신을 쫓는다는 역할을 했고, 혼례 때 신부의 가마가 신랑집 문 앞에 다다르면 박을 통째로 가져다 깨트리기도 했다. 바가지 깨지는 소리를 악귀 쫓는 소리의 대명사로 간주하고 사소한 바가지를 깨트려 주술적인 역할로 사용한 것이다. 그 밖에도 우리의 통과의례로 바가지가 많이 등장한다. 

바가지는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소리다. 깨지는 소리, 긁는 소리, 부딪치는 소리, 뒹구는 소리 등 아주 많은 소리의 이미지를 갖는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소리는 바가지 긁는 소리다. 그 시절에는 없는 살림에 아낙네들이 부엌에서 바가지에 밥을 담아 급히 먹는 때가 많았다. 서럽고 배고픈 아낙네들이 작은 양의 밥을 먹으며 신경질적으로 바가지를 긁는 소리가 남정네들의 귀에는 일종의 저항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닐까. 아낙네들도 우회적으로 바가지를 이용하여 소리를 내어 남편과 어른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전했을 것이다. 요즘도 바가지 긁는다는 말을 많이 쓴다. 현대에 와서는 그 시절 여인네들처럼 은연중에 바가지를 긁는 게 아니라 반항심이 점점 커져 노골적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는데 이를 지금도 바가지 긁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박과 관련된 다양한 풍습들은 풍습은 박의 생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박은 우리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물이다. 실용과 음식으로도 우리의 정서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더 나가서 다양한 품종으로 재배되어 상징적 의미로 우리 주변에 존재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은 바가지마저 플라스틱이나 고무 재질로 바뀌어 옛날의 바가지는 없어지고 말았다. 단지 ‘바가지 긁는다’는 의미만 전래하여 정겨움을 잊고 말았다. 아마도 그런 바가지가 우리 곁에 다시 존재할 수 있다면 가정이 화목하고 어른을 존경하는 미풍양속이 살아나지 않을까. 우뚝하게 솟은 아파트 사이에 박 한 그루라도 심어놓고 달빛 받아 하얗게 빛나는 정겨운 풍경을 그려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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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01 [13:58]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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