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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ㆍ중 국경선 패수는 한반도일 수 없다!”
‘패수 위치 집중토론회’에서 고대사학계 질타
 
민족NGO면 편집장 기사입력  2017/08/07 [13:46]

[민족NGO기사] 지난 7월 22일 구리청소년수련관 대강당에서는 매우 이색적인 학술대회가 열렸다. 일반적인 학술대회와는 달리 ‘고대 한ㆍ중 경계선 패수의 위치에 대한 집중토론회’라는 새로운 토론문화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 기념사를 하는 백경현 구리시 시장

이날 제4회 고구려 국제학술세미나는 구리시(시장 백경현)가 주최하고 (사)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주관하여 진행되었는데, 주제가 「집중토론회 ‘패수는 어디인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또는 연나라와 고조선 또는 고구려의 국경선이었던 ‘패수’의 위치를 찾기 위한 끝장 토론을 기본 취지로 했다.

오전에 개회식과 3단계 이동설을 주장한 이찬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박사의 기조연설이 있었고, 오후에는 이종진((사)해외한민족연구소 이사)을 좌장으로 세 곳의 패수를 주장한 김종서(역사모 회장), 조백하설을 주장하는 황순종(한배달 학술위원), 하남성 제원시로 주장하는 성헌식(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학술위원장)의 주제발표 후 박정학 박사(사)한배달 이사장)이 좌장을 맡아 3명이 2시간 30분의 집중토론을 진행했다.

▲ 패수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 종합

식민사학계의 ‘한반도설은 비판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

이 날 행사에서는 무엇보다도 패수가 각각 다른 위치라고 주장한 4명의 발표자 모두가 <그림1>의 여러 학자들의 주장 중 ‘한반도설과 요동설은 조선시대 사대주의와 일본인 및 그를 추종하는 강단의 위증사학자들의 주장으로서 학문적으로 가장 중요한 1차 사료의 근거가 전혀 없으므로 대꾸는 물론 비판할 가치도 없다’는 데 공감하였다. 그래서 집중토론에서는 이 설들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고 각자 자기주장의 타당한 근거 제시와 윤내현의 난하설 비판 및 여러 사료를 연결시키는 논리전개를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자칫 강단사학 비판의 장이 될 수도 있는 자리였으나 전혀 그렇게 되지 않고,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기점이 될 수 있는 고대 한ㆍ중 국경선 패수를 찾는 데 집중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앞으로의 발전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개회식 후 진행된 기념촬영  

박지원과 신채호도 ‘싸우지도 않고 영토 축소’ 한탄

개인 사정으로 토론에는 참석하지 못한 이찬구 박사는 오전에 ‘패수의 위치에 대한 여러 학설과 문제점’이라는 기조발표를 통해 두 사람의 한탄을 소개하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박지원(1737~1805)은 『열하일기』에서 “아아, 후세 선비들이 이러한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漢四郡)을 죄다 압록강 이쪽에다 몰아넣어서, 억지로 사실을 이끌어다 구구히 분배(分排)하고 다시 패수(浿水)를 그 속에서 찾되, 혹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고, 혹은 청천강(淸川江)을 ‘패수’라 하며, 혹은 대동강(大同江)을 ‘패수’라 한다. 이리하여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이는 무슨 까닭일까. 평양을 한 곳에 정해 놓고 패수 위치의 앞으로 나감과 뒤로 물리는 것은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르는 까닭이다.”라고 제각각의 패수설에 개탄하였다.

신채호는 『조선상고문화사』에서 “평양과 패수는 조선 문명 상의 중요한 지방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1천여 년 동안 그 본래의 위치를 상실하고 1천 여리나 이사하여 평안도의 한 작은 지방인 것처럼 알려졌다. 만일 지금의 패수-대동강을 고(古)패수로 알고, 지금의 평양-평안남도 수부를 고(古)평양으로 안다면, 이는 평양을 잘못 아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곧 조선의 역사를 잘못 아는 것이 된다”고 패수ㆍ한사군 한반도설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런데 임시정부 시절에 일본인 이나바 이와키치와 쓰다 소오키치, 이마니시 류 등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이런 잘못된 사대사학자들 주장의 1차 사료가 없는 학문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실증사학’이라는 편법을 동원하여 압록강 내지 대동강 패수설 및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했고, 광복 후 이를 추종하는 이병도가 고대사학계를 장악하여 후학들에게 가르침에 따라 현재의 노태돈, 송호정 등으로까지 그런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부터 요동설이 등장했고, 지난 세기 후반 북한의 리지린이 대릉하설을, 윤내현이 더 서쪽인 난하설을 주장했으며, 최근 일부 젊은 강단사학자들이 패수 한반도설을 비판하고 패수가 요동지역이라는 설을 제기하고 있으나 아직 강단 위증사학자들은 ‘한반도 평양ㆍ패수설’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찬구 박사의 패수 3단계 이동설

▲ 이찬구의 패수 3단계 이동설   

그러면서 그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헌의 패수 관련 사료들을 소개하고, 종래의 대동강, 압록강, 청천강, 요하, 사하, 고려하, 대릉하, 난하 등 주장의 근거를 소개하면서 결국 패수는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동되었다고 분석하고, 『사기집해』의 ‘조선에는 습수, 열수, 산수의 세 물이 있는데 낙랑조선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취한 것’이라는 기록의 세 강을 추적하여 습수는 영정하, 산수는 조하(조백신하), 열수는 구수(=당하)라고 찾아내고, 이 열수가 패수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수경주』에 패수의 셜명이 불분명한 것이나 지금 중국에 패수라는 하천이 없는 점에서 패수는 고조선의 서구 북경선 이동에 따라 옮겨간 것으로 판단하고, 『괄지지』의 패구(浿丘)를 근거로 1차 패수는 오늘날의 제수였으며, 위만 이전 또는 위만 초기에 북쪽으로 밀려 당하(唐河, 대청하, 구하, 구수)로 옮겨졌다가, 위만 패망 후에 오늘날의 조하(조백하, 산수, 고수)로 옮겨지는 3단계 이동을 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 전혀 새로운 학설로서 중국인들의 지명이동과도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 ‘고대 한ㆍ중 경계선 패수의 위치에 대한 집중토론회’의 모습  


김종서의 각각 다른 세 곳의 패수설

패수의 기록이 있을 당시 또는 이와 가까운 시기의 사람에 의해 쓰인 기록을 최우선시하여 분석한 김종서 박사는 역사기록으로 볼 때 패수는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이었던 패수, 낙랑군 내부를 흐르던 패수, 낙랑군 소멸 후 고구려ㆍ백제사에 등장하는 패수ㆍ패하ㆍ패강 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이날의 토론회의 주제는 고조선의 서쪽 국경선 패수였으므로 그 부분만 소개한다. 그는 한나라의 태사령을 지낸 사마천의 『사기』「조선열전」에는 7회의 패수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역사상 최초로 패수라는 강 이름이며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인 패수라 보고, 그 조건은 조선이 수천 리 영토, 발해만 서쪽이 열구 서쪽, 동이제국과 한나라의 교통로 상, 요동군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 갈석산 동쪽, 요동군 요새의 동쪽, 상류가 서쪽으로 흐르는 등의 조건과 고조선과 한군현 위치 기록에 따른 11가지의 조건 등 19가지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면서 그 하나하나를 증명한 결과 하북성 진황도시 산해관 서쪽을 흐르는 양하(양하)와 석하(석하)가 가장 패수의 조건에 가까운 강이라는 결론을 맺었다.

김종서의 주장은 철저한 기록 분석과 함께 『후한서』「군국지」에 나오는 낙양에서 각 군까지의 거리에 따른 실제 위치를 기본으로 하였는데, 토론 과정에서 성헌식, 황순종으로부터 “그 기록을 100%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강하게 제기되었으며, 주변에 큰 강이 여럿 있는데, 큰 강을 두고 작은 강으로 국경을 삼았다는 논리는 좀 맞지 않는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세 개의 패수설을 만든 기록의 해석에서 꼭 세곳이 달라야 한다는 확실한 이유가 없다는 질문도 받았다.


패수는 지금의 백하-조백하-조백신하라는 황순종

황순종은 패수가 세 곳이라는 김종서의 설과 3단계 이동을 했다는 이찬구 설에 반대하였으나, 이찬구와 같이 『사기집해』의 세 강에서 열수가 패수라고 보았다. 『수경』의 기록을 근거로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북경 북쪽을 지나는 백하가 조하와 만나 조백하가 되는데 이 강이 패수로서 하류에 이르러 동남쪽으로 흐르는 조백신하가 패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 황순종의 조백신하    


패수는 하남성 황하북부에 있다는 성헌식

중국 여러 사서에 기록된 패수 관련 주ㆍ군을 보면 <표1>과 같은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주변 지명들이 지금도 북부 하남성에 있다는 점에서 패수도 황하북부 하남성에 주변 지명들과 함께 있으며, 기록에 나오는 추수(溴水)와 격수(湨水)가 패수라고 한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심수 바로 서남쪽에 있는 작은강이 패수라고 주장했다.

▲ 성헌식의 ‘패수’기록

그는 그 강이 수경주의 ‘패수는 낙랑군 루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해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해’를 황하로 볼 경우 그 흐름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 성헌식의 ‘패수’지도  

특히 성헌식은 중국이 진 장성의 기점을 처음에는 산화관 정성이라고 했다가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단동 소산장성까지라고 있으며 이제는 중국역사부도집에서 황해도까지 그려놓았는데, 그 근거가 이병도의 청천강 패수설가 황해도 수안의 수성설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고대사학계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와주고 있음을 비판했다.

그리고 난하설을 비롯한 하북성설에 대해서는 ‘창려현에 갈설산이 있고, 근처 노룡현에 요서군의 상징인 고죽국의 두 왕자 백이ㆍ숙제가 굶어죽었다는 수양산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인데, 백이ㆍ숙제의 무덤은 현재 산서성 서남단에 실재의 무덤이 있으며, 대청광여도에도 그렇게 그려져 있으므로 하북성 갈석산과 수양산은 가짜이므로 그것을 근거로 패수를 비정하면 틀릴 수밖에 없으므로, 먼저 갈석산과 수양산을 바르게 찾아야 패수도 찾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 김종서는 패수와 격수, 추수는 다른 강을 의미하는데 몇몇 학자들의 추론을 근거로 그 강들이 같은 강이라는 문제를 지적했다. 

▲ 참석한 청중들의 모습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발전 가능성에 희망

이 행사를 지켜본 참석한 시민들은 “강단의 엉터리 주장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설이 정립되어야 하는 데 그것이 되지 못해 아쉬웠지만, 바른 역사를 찾아가는 새로운 토론 방식은 앞으로 여러 가지 과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토론을 조금만 더 진행하면서 발전시킨다면 화백제도와 같이 전원 일치의 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지난 7월 24일 저녁에 개최된 자체 평가회의에서도 발전적 의견이 나왔다.
“처음 실시되는 ‘집중토론회’였기에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려웠고, 진행하는 방법도 안정이 되지 않았으며, 제대로 토론을 하기에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한 등 운영상의 문제점을 도출했으므로 앞으로 이런 토론회 진행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들을 축적했다.”, “발표 및 토론자들도  각자 자신의 주장만이 옳지 않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신이 모르는 사료와 연결고리를 찾는 논리전개 방법도 배울 수 있었으므로 앞으로 패수의 바른 위치를 찾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사람이 발표를 하고 상호토론을 하다 보니 좀 혼란스러웠다. 앞으로는 한 사람이 발표를 하고, 여러 사람이 집중적으로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여유 있게 시간을 계획하고 불필요한 시간을 최소화하면 좋은 결론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황하의 흐름이 현재와 같다는 것을 전제로 패수의 위치를 찾는 데는 한계가 있다. 황하의 흐름과 해안선의 시대별 변동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여 당시의 황하 흐름과 해안선을 바탕으로 기록을 검토해야 한 것이다.”, “토론 내용을 모아서 정리를 하고, 패수 관련 자료를 모두 모아 자료집으로 발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구리시와 협의를 하거나 예산을 줄이기 위해 강의실에서 전문학자와 연구자들만 모여서 토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집중토론회를 자주 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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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07 [13:46]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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