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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역사가 깔려 있는 산 마르코 성당
[연재-62회] 이병창 교수의 유럽철학기행
 
이병창 교수 기사입력  2017/04/19 [15:17]

유럽 철학 기행 5월 11일 베네치아 3

1) 산 마르코 성당

우리는 르네상스식 건물을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아카데미아 다리를 건넜다. 똑 바로 간 것은 아니라 거리와 운하 사이로 비틀거리면서 갔는데도 그 다리에 이르렀다. 이상하게도 모든 길은 아카데미아 다리로 가게 되는 것 같다. 그 거리 사이에 공연과 전시회를 알리는 벽보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한국인 작가도 발견했다. 화가 김민중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동양화 화가 같은데 추상화적으로 단순화 되어 있다. 먹의 농담으로 빛과 깊이를 표현하니 언제가 그를 한번 확인해보아 하겠다.

또 다른 화가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인 이우환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했고 일본의 모노(物; 모노)화 계열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어느새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그의 작품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쇠로 만든 넓은 판 위에 돌이 한두 개 놓여 있는 작품인데 나로서는 통영과 부산 시립미술관 앞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들이 기억난다.

그의 작품은 너무 단순해 오히려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작품 앞에 서서 한참 있으면 쇠와 돌, 돌과 돌, 설치물과 주변 공간, 돌과 빛  사이에는 어떤 긴장된 힘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우환의 작품은 마당의 작은 흰 자갈(모래) 위에 나무와 돌이 몇 개 놓여 있는 일본식 정원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정적과 죽음의 세계를 가로 질러 마침내 베네치아의 중심인 산 마르코 광장에 이르렀다. 르네상스식으로 청초한 느낌을 주는 도서관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의 가운데 산 마르코 성당과 높은 종탑이 있으며, 그 오른쪽에 총독의 궁전이 있다. 총독의 궁전 역시 전형적인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르네상스식 그 한 가운데 성 마르코 성당은 전형적인 바로크식 건물이다. 성 마르코 성당은 언뜻 보기에도 서유럽의 고딕식 성당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비잔틴 즉 동로마 제국의 성당 양식을 닮았다. 건물이 직사각형이 아니라 정사각형을 이루고 그 한 가운데를 커다란 돔으로 덮었다. 정사각형은 비잔틴 크로스를 의미한다. 한 가운데 돔은 세계 어디의 돔과 마찬가지로 절대 왕권의 권위를 상징한다. 입구를 장식하는 아치 역시 비잔틴식 아치이다.

베네치아의 종교는 예나 지금이 가톨릭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성당이 비잔틴식인 이유는 무얼까? 역사를 보면 답이 나온다. 앞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베네치아는 서로마가 무너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동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있다 보니 점차 종교는 가톨릭으로 변했다.

그 때문에 726년 동로마 제국이 우상숭배 금지령을 내렸고 이에 반발하여 도시민이 혁명을 일으켜 공화제를 실시했다. 그 후 샤를마뉴 대제의 아들 페펭이 6개월간 포위했으나 동로마의 도움을 받아 격퇴할 수 있었다. 814년 삼자가 타협한 끝에 동로마의 지배를 받아들이더라도 종교는 가톨릭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타협의 산물이 곧 비잔틴 양식의 산 마르코 성당인 것이다. 

▲ 산 마르코 성당 현관 입구 이층에 네 마리 말이 보이고, 그 위에 장미찬 위에 날개달린 사자가 보인다.    © 이병창

2) 날개달린 사자

산 마르코 성당은 동로마 제국과 관련된 유물이 많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소개한 사두마차 상이다. 이 상은 4차 십자군 전쟁 때 콘스탄티노플을 1204년 함락하고 빼앗아 왔던 것이다.

사두마차상은 현관 입구에 놓여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전당 앞에 약탈을 의미하는 사두마차 상을 놓는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차라리 나폴레옹처럼 다른 개선문을 짓고 그 위에 올려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산 마르코 성당은 화려하지만 이런 음울한 역사가 깔려 있다. 이런 역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흔적이 바로 이 성당의 이름이다. 이 성당은 828년 짓기 시작했다. 이때 베네치아의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마가복음을 지은 성 마르크의 유골을 훔쳐왔다. 이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성당이기에 산 마르코 성당이다. 이 시기라면 814년 사를마뉴 대제와 동로마의 협약으로 베네치아가 도시의 자율성을 인정받은 직후이니, 성당을 지은 동기는 분명하다. 그 역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산 마르코 성당의 정문 한 가운데 장미 창 위 아치에 보면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동물상이 붙어 있다. 바로 날개달린 사자인데, 이는 성 마르크를 상징하는 것이다. 왜 성 마르크가 날개 달린 사자일까? 사자는 요한 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을 지키는 네 동물 가운데 첫 번째이다. 이에 따르면 사자는 날개가 6개 달려 있고 날개 끝에는 눈이 달려 있다. 성 마르크가 날개 달린 사자로 상징된 이유는 성 마르크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전령이기 때문이다. 이 날개 달린 사자는 산 마르코 성당을 상징하며 나아가 베네치아 공화국을 상징하는 문양이 되었다.

그런데 성 마르크는 예수 생전에 그를 믿은 70명 사도 중의 하나로 베드로를 수행하고 나중(49년)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웠다. 이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나중에 아프리카에 세력을 펼치는 곱틱 정교회와 동로마로 향하는 그리스 정교회의 모태가 된다. 그러므로 서방의 가톨릭에서는 교회를 그에게 봉헌하는 법이 없다. 그에게 봉헌된 대부분의 성당은 동로마 정교회 쪽이다.

성 마르코 성당은 가톨릭 성당이면서도 성 마르크에게 봉헌되었으니, 이 사실은 성당의 비잔틴 양식과 더불어 동로마와 샤를마뉴 대제의 타협을 잘 보여주는 흔적이다.

3) 총독궁

성 마르코 성당 앞에 세워진 높은 종탑에 올라가려고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종탑에 올라가면 베네치아가 한 눈에 보일 것 같아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그 때문에 줄을 지어 서 있을 욕망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   종탑. 기하학적 단순성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 이병창

산 마르코 성당 옆에는 그 유명한 총독궁이 있다. 앞에서 사진으로 소개한 대로 전형적인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베네치아 입구에서부터 산 마르코 광장까지 직선거리로는 얼마 안 된다. 하지만 길과 운하를 이리저리 돌면서 왔기에 홍교수와 나는 너무나 다리가 아팠다. 총독궁 옆에는 카지노로 유명한 리도 섬으로 건너가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 그 앞 시원한 그늘에 주저 않자 홍교수와 나는 마주 보이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상념에 사로잡혔다.

내가 침묵을 깨고 홍교수에게 물었다. “홍교수, 베네치아의 유명한 인물을 아시는가?” 한국사를 공부한 홍교수가 단번에 대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홍교수는 고등학교 시절 지식을 동원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르네상스 화가, 틴토레토가 여기 사람이 아닌가?” 맞다. 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또 이렇게 말한다. “섹스피어의 희극, 오델로나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가 여기지 않나? ”

그러나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사람은 그런 화가나 작중 인물이 아니었다. “자네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 재미있으면 저녁을 당신이 사고!” 홍교수가 좋다고 한다. 재미없는 이야기인 줄 알기 때문이다.

▲ 총독궁 정면. 앙리 루소라는 야수파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들어가 보고 싶지만 다리가 너무 아파 그만 두었다. 건물의 타일이 이슬람의 기하학적 문양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는 르네상스식이다.     © 이병창

“저기, 총독궁이 보이지? 저 지붕이 무어로 되어 있는지 아는가?” 물론 밑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다. 종탑에 올라 내려다보면 볼 수 있다.

“납판으로 되어 있다네. 왜 납으로 된 지붕을 만들었는지는 나도 몰라?” “지붕 바로 밑에는 일종의 다락처럼 방이 있는데, 그걸 납의 방이라 말한다네.” “총독궁의 동쪽 날개 밑에 있는 7개 정도의 납의 방은 일종의 국사범을 다루는 방이었다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보안법 위반인데 당시로 보면 종교를 모독한 자나 반역자를 가두었지” “그런데 그 방에 베네치아를 사람들이 잊을 수 없게 만든 인물인 카사노바가 갇혀 있었다네, 그가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지.”

카사노바라는 인물의 이름이 나오니 홍교수도 약간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카사노바는 베네치아 출신이다. 베네치아가 망해가는 18세기 초의 사람이다. 당시 베네치아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인물이 총독이었지만 그는 베네치아를 살리기 위해 도시에 도박과 카니발을 육성했다. 당연히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고, 영국의 떼돈 번 부르주아가 단골 고객이었다. 이를 위해 일정한 정도 도시의 타락을 허용했으나 때때로 신경질적으로 타락한 자를 처벌했다.

카사노바의 부모는 떠돌이 배우였으니(아버지는 8살 때 사망), 카사노바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카사노바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렸다고 믿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다니면서 마법과 주문에 관심을 가졌다. 어머니가 보내 준 돈으로 그는 파두아 기숙학교에 다녔으며 파두아 대학에서 교회법을 연구했다. 이때 그는 법보다는 의술, 연금술 등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이게 나중에 그가 여성을 유혹하는데 사용되었던 기술이었다.

그는 베네치아로 돌아와서 귀족, 추기경 등의 시종으로 일하면서 그들의 온갖 악덕(간음, 도박, 사치, 결투 등)을 배웠다. 그러다가 그는 총독에 의해 본보기로 처벌되었다. 상류 사회 대부분이 그와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비천한 출신이니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총독은 그에게 종교모독의 죄를 걸어서 납의 방에 5년간 감금을 명령했다.

“납의 방에는 빛도 들어오지 않았어.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천장도 낮았고, 그 속에서 카사노바는 13개월을 견디었지, 그 뒤 그의 후원자였던 귀족이 총독을 설득하여 좀 좋은 방으로 이동했어. 그때 그는 탈출을 결심했다네. 자기 방의 바닥을 파헤쳤어. 그런데 탈출을 계획했던 사흘 전에 다른 방으로 옮겨진 거야. 그는 낙담에 빠졌지만 다시 용기를 냈어. 그는 이웃하는 방에 갇힌 성직자를 꼬아서 함께 탈출을 계획했어. 그때 그의 방에는 그를 감시하는 스파이가 있었는데, 카사노바는 그를 속였어. 그의 탈출은 베네치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지.”

“그는 이 방을 탈출하여 30년 뒤에 자기의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발표했어. 그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네. 자기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자기의 탈출이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라네. 그건 전적으로 운이었으니까. 자기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탈출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라 하네. 그게 용기라는 것이지.”

“어때, 카사노바란 인물이? 사회적으로 본다면 그 시대에는 그런 인물이 많았어. 모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지. 어쩌면 이게 초기 자본가의 모습이 아닐까? 그들은 야비한 수단을 통해 귀족의 힘과 대결했으니, 헤겔은 이런 시대를  <기만의 왕국>이라고 명명했다네. 정신분석학자라면 그의 끝없는 모험 밑에는 어머니에게 버려졌다는 상흔이 있을 거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는 파리로 가서, 그에 못지않은 사기꾼들과 대결했어. 그는 이때 프리메이슨에 가담하기도 하고, 장미십자단에 가입하기도 했어. 그는 연금술과 마법을 통해 수많은 여성의 몸과 마음을 기만했지. 한때 그는 시민을 감시하는 스파이가 되기도 하고, 로또판매권을 얻어서 돈을 벌고 이걸로 비단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그 많은 재산은 도박과 여성편력에 바쳤지. 우리나라에 최태민이 딱 그런 놈이지.”

“당시 프랑스 정부는 그의 사기 재능을 이용하여 그를 재정부에 들어와 일하라고 했어. 당시 무너지던 프랑스 절대 정부가 사기꾼을 이용해 국가적 사기를 계획한 거지. 그런데 그는 그런 요구를 단연코 거절했다네. 그 이유는 그의 회고록에 의하면 방랑벽 때문이라네. 그는 그 후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여성편력과 도박, 사기를 일삼았으나 세월이 가면서 그의 마법과 연금술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어. 점차 그는 몰락했어.”

“그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직후 1798년 사망했어. 그의 회고록에는 당시 몰락하던 귀족의 무능과 타락을 비판하면서 혁명은 불가피했다고 하네.”

나의 이야기가 흥미 있다면 좋은 저녁을 얻어먹을 수 있었을 텐데 실패한 것 같다. 역사를 공부하는 홍교수한테는 지루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역사에는 워낙 그런 놈들이 많으니 말이다.

▲ 총독궁 앞에서 보는 바다 건너. 종탑과 정사각형 돔식 건물이 산 마르코 성당을 그대로 복제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원래 비잔틴 양식 앞에 르네상스식으로 신전식 표면을 붙였으니 이런 걸 바로크식이라 한다.    © 이병창

베네치아는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카사노바로 끝난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홍교수는 베네치아의 골목에 있는 중고서적 가게를 발견했다. 이리저리 뒤지더니 고지도를 몇 장 산다. 내가 눈치로 “그거 다 가짜야” 하고 말렸으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짜도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은 사실이니까 학자한테는 진짜든 가짜든 무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리얄토 다리를 건너 기차역 쪽으로 나왔다. 우리는 내일 로마로 간다. 진짜든 가짜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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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9 [15:17]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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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유럽철학기행.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 총독궁. 산 마르코 성당 종탑.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