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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삼국시대는 4세기 후반부터’라는 이병도
황순종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의 저자
 
황순종 기사입력  2017/04/18 [16:08]

▲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다』 저자
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32)
지난 호까지 쓰다 소키치와 이마니시 류의 학문적 논증이 부족하고 막연한 신라 후진론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맞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대해 비판했다. 이번호부터는 우리나라 고대사학자들이 이들을 맹종하는 사관으로 삼국의 초기 역사를 말살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장을 고발키로 하겠다.

현재 교과서를 보면 『삼국사기』의 삼국건국 기록은 소개하면서도 고구려는 6대 태조왕(재위 126~145), 백제는 8대 고이왕(재위 234∼286) 또는 13대 근초고왕, 신라는 가장 늦은 17대 내물이사금(재위 356~402) 때에 중앙집권국가가 되었다고 하여 이때 실질적인 건국이 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이병도는 철저한 일본인 추종자
이런 매국사학의 태두가 이병도(1896년 ~ 1989)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는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까지 와세다 대학에서 식민사학자인 요시다 도고[吉田東伍]와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등으로부터 배웠으며, 대학 졸업 후  약 7년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를 하다가 1925년 조선사편수회에 발탁되어 이마니시 류(今西 龍) 아래에서 1929년까지 고대사 부분 수사관보를 지냈던 사람으로서 광복 후 서울대학 사학과 주임교수가 되어 신석호와 함께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자신들이 배운 식민사학을 우리나라 그대로 퍼뜨린 장본인이다.

이병도는 학문적 논증이 부족한 상태로 우리 역사를 난도질한 일인들의 이런 다양한 논리를 한 마디 비판도 하지 않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삼국의 건국시기를 완전히 부정하면서 신라는 박혁거세거서간 때가 아니라 17대 내물이사금(재위 356~402) 때 건국되었다는 엉터리 주장을 폈으며 이것이 학계의 거부할 수 없는 정설이 되어 현재 교과서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이병도의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다.
  
"신라의 6촌과 6부의 구별은 마치 고구려의 5족과 5부의 구별과 같은 것으로 사료되나니(고구려의 5족 및 5부에 대하여는 이미 이마니시, 이케우치 양 박사의 옛 설이  있거니와) 상언(詳言)하면 6촌은 초기 고구려의 5족과 같이 일종의 씨족적 취락으로서, 각 씨족단은 각별의 추장하에 혈연적, 지연적으로 결합한 사회조직인 듯하고, 6부는 후기 고구려, 후기 백제, 고려 및 근세조선의 도내(都內)의 5부제와 같이 일종의 행정구역으로서, 씨족사회가 붕괴되어 국가정치의 조직이 발달하던 때의 산물인 듯하다."(『한국사, 고대편』, 2012, 179쪽)

 
신라 초기의 6촌이나 6부는 씨족적 또는 씨족이 붕괴된 직후의 산물이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견해가 식민사학자인 이마니시 등의 설을 따른 것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신라 초기 모습은 다음과 같다.
 
  
시조 혁거세거서간 8년 왜인이 침범했으나 시조의 신덕이 있음을 알고 물러갔으며, 19년에는 변한이 항복해 왔다. 5대 파사이사금 때(서기 102)는 음집벌국을 정벌하매 실직, 압독의 2국도 항복하였다. 106년에는 가야를 정벌하고 107년에는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을 정벌하여 병합하였다. 9대 벌휴이사금은 소문국을 정벌, 11대 조분이사금은 감문국, 골벌국을 군으로 삼고, 15대 기림이사금 때(서기300년)는 낙랑, 대방 두 나라가 복속해 왔다.

 
신라는 초기부터 꾸준히 주변국에 대한 정복활동을 벌린 강한 고대 정복국가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런 기록을 무시하고 씨족사회 운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내물왕 때는 왜와 말갈의 침입을 물리친 외에는 47년의 재위기간 동안 큰 업적도 기록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때에야 건국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학자적 양심조차 저버린 참담한 모습
내물이사금은 재위기간이 356~402년으로 박혁거세의 건국 연대보다 4백 년 이상 뒤진 사람이다. 따라서 이병도는 신라가 4세기 후반에 건국되었으므로 실질적인 삼국시대는 그때부터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7세기 후반까지의 약 3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우긴다. 그 이전 4백 년은 삼국시대가 아니라 삼한(마한·진한·변한) 78국의 후진적 읍락국가가 난립한 시대였다고 하여 『삼국사기』에 기록된 7백 년 넘는 삼국시대를 절반 이상 칼질해 버린 것이다. 그러면 그 이전인 단군왕검의 고조선도 당연히 국가조직이 아니었다는 것이 된다.

▲ 초기 이병도의 많은 논문이 게재된 진단학보  

학자적 양심이라도 있다면, 최소한 고조선과 삼한이 고대국가였음을 기록한 수많은 중국의 1차 사료들을 무사하거나 『삼국사기』의 기록을 명확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부정하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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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8 [16:08]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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