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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원당형의 형식을 따른 선암사의 고려시대 3 승탑
 
정진해 문화재 전문위원 기사입력  2017/04/12 [17:09]

문화재 : 순천 선암사 북 승탑(보물 제1184호)
           순천 선암사 동 승탑(보물 제1185호)
           순천 선암사 대각암 승탑(보물 제1117호)
           선암사마애여래입상(전남 문화재자료 제157호)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선암사 (죽학리)


▲ 선암사 응진당     © 정진해

무우전 우측에 또 하나의 구역이 설정되어 있는데 담장 안쪽에 응진당을 중심으로 좌측에 진영당, 우측에 달마전을 배치하였다. 응진당은 석가모니의 설법장인 영상회상에서 유래한 전각으로, 1798년에 중창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맞배지붕 건물이다. 사각의 돌을 빗쌓기하여 높은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외벌대를 둘렀다. 덤벙 주초를 놓은 다음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창호는 정면 각 칸에 2분합문을 달았다.

응진당 좌측에 위치한 진영각은 두벌대의 낮은 기단위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두벌대 낮은 기단위에 세워진 건물로서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을 한 특이한 지붕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은 1798년에 중건한 건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응진당 좌측의 미타전은 요사형식의 승방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서 전각의 의미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낮은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특별한 공포 형식을 취하지 않은 민도리집이다. 이 건물도 1798년에 중창한 건물이다.

응진당 우측 중심축을 향해 배치된 달마전은 요사와 선방으로 사용되는 건물로 벽안당과 ㄱ자형으로 붙어있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건물로 응진당 쪽에는 맞배지붕이고, 반대쪽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기단에 묻힌 초석위에는 원형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에 주두를 얹을 뿐 민도리 형식을 했다. 응진당 영역은 주변이 담장으로 둘러싸였기 때문에 이 건물의 방향은 북서쪽으로 되어 있어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응진당 뒤쪽에는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단출한 건물이다. 내부에는 산신탱화 1점이 걸려 있을 뿐이다.

운수암 방향의 후문을 통해 차밭 가장자리에 이르며. 북 승탑과 동 승탑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만난다. 차밭 끝자락에서 한 참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기슭에 자리 잡은 북 승탑이 숲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 깬 돌로 3단을 둘렀고 그 중앙에 철채 보호막을 두른 중앙에 세워진 북 승탑은 전체가 파손 없이 잘 남아 있다. 주변에는 고사릿과·사초과의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어 더욱 숲이 우거져 있어 보인다.

▲ 선암사 북 승탑     © 정진해

북 승탑은 대웅전에 북쪽으로 약 400m 정도 떨어진 차밭을 지나 숲 속으로 한참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나타나는데, 이곳에 선조암이란 암자가 자리하고 있던 자리에서 더 올라온 위치에 있는 승탑이다. 현재 그려진 안내도를 보고 찾아오면 방향과는 사뭇 다른 위치에서 헤매다 그냥 뒤돌아서야 할 정도로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 북 승탑은 보물 제118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팔각원당형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기단은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이 승탑의 주인공은 알 수 없으며, 기단부인 지대석과 하대석, 중석, 상대석을 갖추었고, 탑신부와 상륜부를 모두 갖춘 완전한 작품이다. 하대석에는 사자상과 달팽이 같이 생긴 구름무늬를 새겼고, 중대석은 짧으면서 중앙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고형이며 팔면에 엷은 안상을 새겼고 상대석에는 통식인 팔엽앙연을 새겼다. 그 중앙에 화형을 시문하여 일단의 팔각주록과 괴임대를 표현, 탑신을 받치고 있는 상면까지 연결되고 있다.

탑신부의 탑신도 팔각으로 각 면의 전후에는 문비와 자물쇠가 새겨져 있으며 다른 사면에는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팔각으로 기왓골 없이 편평하고 낙수면은 약간 휘어진 상태이다. 추녀 끝의 귀꽃은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으며 8개 중 3개는 훼손되어 없는 상태이다. 상륜부는 상륜 받침과 보륜, 보개, 보주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나 보륜과 보개, 보주 일부가 깨어져 나갔으며 특히 보개의 추녀 끝에 귀꽃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으나 이것도 깨어져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 선암사 동 승탑     © 정진해

북 승탑에서 동 승탑을 찾아 나서는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안내도를 따라 방향을 잡고 따라가다 보면 숲 속의 오솔길은 흔적을 감춘다. 스님의 도움을 받아 동 승탑 입구에 이르자 북 승탑과는 먼 거리가 아니지만 이정표가 없어 목표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스님의 도움으로 알려준 방향을 따라 오솔길을 오르니 북 승탑과 같은 형태로 깬 돌로 3단으로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 중앙에 보호책을 두르고 서 있다. 이 승탑은 보물 제118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치 않고 있으나 아도화상의 승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의 기록에는 이 승탑을 가리켜 무전승탑이라 하였고, 선암사중수비문에는 1철불 2보탑 3승탑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3승탑을 대각암승탑과 북 승탑, 동 승탑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동 승탑은 8각원당형의 전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기단부는 8각의 바닥돌 위에 안상을 새긴 고임대를 마련하여 구름무늬를 조각한 아래 받침돌을 올려놓았다. 가운데 받침돌과 윗 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결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탑신부의 몸돌은 윗부분이 좁아진 배흘림형으로, 앞면에는 봉황이 새겨진 문의 양 옆을 지키는 인왕상을 새겼고 뒷면에는 문고리가 달린 문짝을 새겼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팔각 우동마루 끝의 전각에는 귀꽃문이 장식되었고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보개, 보주가 그대로 남아 있다.

▲ 선암사 대각암     © 정진해

3승탑 중 나머지 대각암 승탑은 암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동 승탑과 북 승탑에 비해 접근이 쉽다. 대각암은 대각국사 의천이 이곳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대각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선암사의 사내 암자 중에서 가장 화려한 누문을 갖춘 곳으로 연못을 돌아서 누문 아래의 계단을 통해 들어서면 대각암 마당에 이른다. 대선루라는 이름을 가진 누각은 완만한 경사지에 4단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배치하였는데 사찰의 가람배치 형식과는 다르게 건물이 들어서 있다.

남향을 하고 있는 대선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8각의 기둥을 세운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누문 앞의 연못은 천원지방을 뜻하면 모습을 갖추었다. 누문 아래로 통하는 게 일반적인 진입 주조겠지만 대각암은 사방으로 트여 있어서 굳이 누문 아래로 거치지 않고 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누문 옆에 대문 같은 문을 두었는데,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상태로 세워져 있는데 왜 이곳에 문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 선암사 대각암 승탑     © 정진해

대각암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 승탑은 전체 모습이 팔각 원당형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의 승탑이다. 승탑의 주인공은 확실치 않으나 대각암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고려시대 천태종을 개창했던 의천 대각국사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각국사는 선종 11년(1094)에 해인사를 거쳐 화엄사, 규봉암, 선암사 등에 머물렀다는 인연과 선암사를 중창하였던 인물이다. 그래서 의천 대각구사의 승탑이 아닌가 한다. 현재 선암사의 북 승탑과 동 승탑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데, 혹시나 2기의 승탑 중 한 기가 대각국사의 승탑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승탑은 방형의 지대석 위에 기단과 몸돌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대석 위의 기단석 각 면에 안상을 새긴 팔각의 괴임대가 놓였다. 그 위로는 구름무늬가 조각된 하대석을 얹었다. 중대석은 각 면에 안상을 새겼고, 상대석은 하면에 2단 괴임을 두고 그 위로 8판의 연화문을 장식하였다. 상면에는 3단의 각형 괴임대를 팔각으로 돌려 위층인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의 몸돌은 8각으로 각 모서리에 우주를 새기고 전후면에 문비와 자물쇠가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기왓골 없는 우동마루가 굵게 표출되어 있으며 각 추녀 끝에는 귀꽃이 높이 솟아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보륜, 보개, 보주가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 중석이 협소한 느낌을 주고 있으나 지붕돌의 장중함이나 하대석의 정교한 구름무늬 등은 통일신라시대의 기법이 전승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 정진해

대각암승탑에서 다시 선암사로 내려오는 중간의 바위 면에 선각의 마애여래입상이 약 7m 정도의 높이에 움푹 들아 간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마애불 바로 곁에 ‘甲辰三月日‘이란 명문이 있으나 연대를 알 수 있는 연호가 없어 어느 때의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선암사 사적기나 다른 문헌이 없어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다.

나발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솟아 있고, 상호는 원만하며, 이마에는 백호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호에 비해 귀가 크게 묘사되었는데, 마치 법주사의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의 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목구비는 균형 잡혀 있으며 얼굴은 원만한데 비해 눈꼬리가 치켜져 위로 올라간 모습이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가슴에는 卍자가 새겨졌는데, 당시 불상을 조성할 때 새겼는지는 알 수 없다.

▲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 정진해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몸 전체를 덮고 있다. 왼쪽 팔에 걸친 옷과 가슴을 내려 덮은 옷이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다리 밑으로 수직이 되게 내려뜨려 손가락을 펴고 있고 왼손은 팔을 굽혀 가슴 위로 올렸는데. 엄지와 중지를 모아 중품인을 취하고 있다. 선으로 이루어진 불상이지만 단아한 얼굴, 정교한 나발의 표현 등에서 뛰어난 기법으로 보여주지만 법의의 도식화된 무늬와 결부좌한 다리 부분이 비약한 점, 신체 부위의 전신 파악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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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2 [17:09]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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