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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럽다’와 ‘~같다’의 남용
김해빈 시인, 칼럼니스트
 
김해빈 기사입력  2017/04/17 [11:55]

‘~스럽다’는 명사 뒤에 붙어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로 일상에 흔히 쓰이는 말이다. 대체로 어떠한 상황에 대한 설명과 표현이 부족할 때 쓰게 된다. 가장 흔한 말로는 ‘신비스럽다’가 있다. 원래는 ‘신비하다’로 써야 하지만 신비한 자체에 의문이 가는 이유로 ‘스럽다’를 습관적으로 쓰는 것이다.

또한, 비슷한 예로 ‘~같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어떤 음식을 먹거나 무엇을 보았을 때 그것에 대한 감동이나 판단을 ‘좋은 것 같다’, 또는 ‘맛있는 것 같다’라고 하는데 이 같은 말은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맛있다. 좋다. 아니다. 그렇다 등 느낌의 정확성을 주장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건 그만큼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주고받는 언어의 책임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말의 중요성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하여 검찰에 출두하였는데 국민 앞에 ‘송구스럽다’라고 말했다. 과거를 보면 고위 공직자나 유명인사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국민에게 자신의 잘못이나 심정을 피력하여 왔다. 하다못해 단문의 사죄성 말이라도 고개 숙여야 한다.

‘송구하다’라는 말은 ‘마음이 두렵고 거북한 느낌이 있다’라는 형용사다. 자신이 당한 일이 억울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여도 무방한 말이다. 그러나 ‘송구하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송구스럽다’라고 했다. 국민 앞에 섰으나 잘못이 별로 없는데 모함을 받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는 국민에 대한 사과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운 말이 된다.

예로부터 권력자에게는 직설적인 화법이 통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왕정시대 임금에게 ‘전하,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라고 직언하는 신하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부당한 명령이라도 일단은 승복한 뒤 과거와 비교하여 모호한 대답을 하여 자리를 보전하였다. 역사 속의 간신이라는 인물들은 임금에게 아첨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국민이 임금이다. 대통령도 국민의 공복이 분명하다. 그러한 이유로 국민에게 직접적인 말로 표현 하지 못했을까. 이처럼 ‘스럽다’와 ‘같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만사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자기주장이 없어 분명한 대답을 못 하고, 애매하게 말하는 것이다. 현 시대의 젊은이들이 자신감이 없다면 험난한 사회생활을 어떻게 헤쳐 나가겠는가.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명확하게 어휘를 구사하지 못해 아쉬웠다. 과연 젊은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니면 말의 구사가 잘 못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말은 그 사람의 전부라 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사람의 행동과 인격은 말에서 나온다. 그런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는데 분명하지 못해서야 무슨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요즘 거리에서나 방송매체 등 ‘말’의 홍수에 살면서도 말의 뜻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앞으로는 ‘신비스럽다’. ‘송구스럽다’. ‘그런 것 같다’, ‘그런 것 같지 않다’ 등 애매한 대답을 하지 말고 분명하게 ‘신비하다’, ‘송구하다’, ‘같다’, ‘아니다’ 등 명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지니는 게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바른말을 구사하는 것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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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7 [11:55]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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