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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부활할 것 같은 베네치아
[연재-61회] 이병창 교수의 유럽철학기행
 
이병창 교수 기사입력  2017/04/12 [06:36]

유럽 철학기행 5월 11일 베네치아2

1) 베네치아

베네치아로 들어오자 말자 호텔에 짐을 풀고, 이번에는 전철 대신 버스를 탔다. 버스는 호텔이 있는 신도심에서 베네치아 섬으로 가는 연결도로를 달렸다. 바다 바람이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왔다. 나는 바다를 보는 것보다 바다 바람의 냄새가 좋다. 비릿하며 찝찔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가면 마음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버스에 내려 이미 따가운 햇살과 들끓는 관광객 한 가운데 내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 베네치아 섬으로 들어갔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흩어진 베네치아 섬 가운데 바다 맨 앞에 길게 방죽마냥 늘어선 리도 섬(카지노가 있다는 섬)을 제외하면 크게 두 개의 섬으로 나누어진다. 편의상 좌, 우 섬이라 하겠다. 두 개의 섬은 마치 암수 궤짝 열쇠처럼 연결되어 있다.

두 개의 섬 가운데 대운하가 흐른다. 두 섬을 연결하는 아래 다리가 아카데미아 다리이고 위에 있는 다리가 리얄토 다리이다. 관광객은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아 다리로 건너가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 다시 리얄토 다리로 건너온다. 개념은 그런데 베네치아 안으로 들어가면 불규칙적으로 나있는 거리와 운하 때문에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아무리 헤매다가도 결국 두 개의 다리로 모아지게 되어 있으니 그게 묘한 이치이다.

관광객이 처음 베네치아 두 도시로 들어가서 받는 충격은 어떤 인상 때문이다. 그 인상은 고요한 정적 속에 부패한 죽음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운하에 흐르는 탁하고 정지한 듯한 물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집은 칠이 벗겨지고 벽은 바람에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가끔 누군가가 일부로 걸어놓은 듯한 빨래는 오히려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 정적의 도시, 베네치아   © 이병창

▲  빨래들이 너무 인위적이다.   © 이병창

▲ 죽음의 그림자 같은 베네치아    © 이병창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없는 이 도시 사이로 화려한 빛깔의 옷을 입은 관광객이 느리게 흘러간다. 거리 좌우로 문을 연 가게, 레스토랑이며 기념품상점이며, 모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뿐이다. 관광객은 마치 입에 잎을 하나씩 물고 썩은 나무 등걸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떼처럼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떠들고 지나간다.  

나는 베네치아 섬으로 들어가면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60년대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적인 감독인 비스콘티가 말년에 만든 영화이다. 원작은 토마스 만의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음악 작가이다. 그는 자기 예술에 한계를 느끼고 혼자 베니스 여행을 떠난다. 그는 머물고 있던 호텔의 식당에서 어떤 소년을 만난 이후 그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는 점차 소년에게 열정을 느낀다.

어느 날 소년은 누이와 함께 가정교사를 따라 베니스 산책에 나선다. 그때 주인공도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앞에 걸어가는 소년과 얼마쯤 떨어져서 뒤를 따르는 주인공 사이에는 서로 알듯 모르는 듯한 교감이 이루어진다. 시선이 교환되고, 그 시선은 무심한 듯하지만 어떤 암시가 담긴 듯하다. 카메라는 서로 떨어져 걸어가는 그들의 발걸음이 기묘하게 어울리는 것을 잡아낸다. 

2)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영화가 전개되는 시대는 20세기 초이다. 그 당시 유행을 이루었던 아르누보 양식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여인의 옷과 모자, 호텔의 인테리어,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이 모두 아르누보 양식이다. 아르누보 양식은 화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율동성보다는 오히려 죽음이 느껴지는 양식이다. 이는 모르는 힘에 의해 세계 대전으로 끌려가는 그 시대의 문화를 상징한다.  

영화를 보면, 바로 이 시기 베네치아에 콜레라가 유행했다. 이미 몇 명이 감염되었지만 호텔이나 시 당국은 이를 은폐했다.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을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콜레라를 예방하기 위해 거리 곳곳에는 석회를 곳곳에 뿌려놓았다. 이런 죽음의 그림자 속에 주인공과 소년 사이에 동성애적인 교감이 흐른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소년을 그렇게 뒤좇아 다니다 갑자기 석회가 뿌려진 우물가에서 가슴에 충격이 다가와 쓰러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소위 죽음의 미학의 절정이다. 말러의 장송곡 풍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주인공은 해변에서 또래와 장난치는 소년을 바라보면서 심장마비로 죽어간다. 바다 위에 흰 태양이 작열한다.  
 
죽음과 성적 욕망이 어울리는 분위기, 지금은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죽어가는 도시와 화려한 관광객은 어울리는 것은 아니면서도 묘하게도 어울린다. 우리는 방향도 정확히 모른 채 관광객의 느린 발걸음을 뒤좇아 베네치아의 구도심을 흐느적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3) 르네상스 양식
그래도 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 안에도 청초한 풀꽃처럼 피어난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베네치아는 10세기부터 나폴레옹에 의해 몰락하기까지 수많은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니 실로 건축양식의 보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건축물이야 유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 관심 밖이지만 르네상스식은 다만 이태리에서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찾을 수 있다 한다. 나는 눈을 들어 빼곡하게 차있는 건축양식의 창고 속에서 르네상스식을 골라내려 했다.

백화점에서 싸고도 아름다운 옷을 찾아내는 여인의 감각을 나도 갖추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르네상스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식 건물을 발견할 수 없다. 그래도 운 좋게 몇 개 르네상스 식 건물을 발견할 수는 있었으니 만족스럽다.

▲ Santa Maria del Miracoli 성당   © 이병창
▲  산 마르코 광장의 도서관    © 이병창
▲ 산 마르코 광장의 총독궁     © 이병창

르네상스식이란 르네상스 시절 발전된 건축양식을 의미한다. 르네상스식이라면 지중해 무역을 배경으로 쌓아올린 부를 기반으로 한다. 15세기 동로마가 멸망하자 많은 동로마 학자가 이태리로 건너오면서 발생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 시대 고전주의적인 문화와 가치가 다시 부활한다. 그렇다면 그리스 고전문화의 특징이 무엇인가?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그리스 고전문화의 특징을 자연의 지배 아래서 개인의 자유를 점차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그리스 고전문화에서 흔히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조화와 균형(아폴론적 요소)이다. 소위 황금분할의 비율이다. 그러나 이런 조화와 균형의 배후에는 자연의 파괴적인 힘(디오니소스적 요소)이 넘실거리고 있다. 이 조화와 균형은 바다의 포말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하는 것과 같으며 독재자의 독재를 뚫고 지금 막 탄생한 자유와 같다.

르네상스식이란 그리스 고전문화와 같은 처지에 있다. 중세 인간을 지배한 신적인 힘으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되찾았으나 아직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하지만 르네상스식에는 처음 자유를 되찾은 사람들이 갖는 자유에 대한 생생한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러기에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이 르네상스이다.

▲ 르네상스식 건축물     © 이병창

르네상스식 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르네상스 건축물이다. 르네상스식 건축물을 찾는 요령을 말해보자. 간단하다. 일단 중세를 지배한 고딕(볼트, 궁륭) 건물은 아니다. 그렇다고 기둥이 건축물의 힘을 받는 그리스식도 아니다. 고딕처럼 벽돌로 쌓아올리지만 지붕은 서까래로 받친 삼각지붕이다. 그러므로 벽돌 벽과 삼각 지붕(밑에서 보면 평평한 지붕일 수도 있다)이 기본이 된 건물이다. 자연히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건물이 된다.

▲  르네상스식 건축물     © 이병창

고딕과 달리 건물이 높지 않고 나지막하니(지중해의 수평선이라 한다), 벽이 두껍지 않다. 벽면에 창문을 내며 아치(비잔틴식, 이슬람식 아치도 포함), 원 등의 형태를 통해 장식한다. 정면에는 그리스 식 기둥을 심어 그리스 신전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삼각형, 사각형, 기둥, 아치 등이 조화를 이루니, 유크리트 기하학적 조화는 단아함, 청초함, 애틋함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기하학적 조화가 중세 신의 지배를 뚫고 다시 등장한 이성, 자연과학과 합리주의를 상징한다.

베네치아는 전체적으로는 죽어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곳곳에 청초한 풀꽃처럼 르네상스식 건축물이 숨 쉬고 있어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듯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발견한 것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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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2 [06:36]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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