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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매 향기가 퍼져나가는 조계산의 선암사(4)
 
정진해 문화재 전문위원 기사입력  2017/04/07 [09:42]

문화재 : 순천 선암사 선암매(천연기년물 제488호)
           선암사팔상전 (전남 유형문화재 제60호) 등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죽학리)



대웅전 좌측에 대웅전을 향해 서 있는 건물이 지장전인데 지장보살을 비롯한 명부의 십대왕을 모셔져 있는 이 건물은 1823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년 뒤에 중건한 건물이다. 내부의 화려한 조각상이 좌우로 줄지어 서 있는데, 이곳 사찰 내의 전각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각상을 갖추었다. 외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와 원형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겹처마를 하고 있는 건물이다.

▲ 선암사 지장전     © 정진해

외부의 기둥머리에는 창방과 평방을 걸치고 주두를 얹었으며, 주심포형식의 공포를 짰으나 살미부분이 익공형식을 하여 주심포에 익공형식을 가미한 모습이다. 익공 형식의 위에는 8각형의 외목도리가 돌출되어 있다. 박공부분에는 비바람으로부터 벽을 보호하기 위해 풍판을 달았고, 평방 위로부터 공포와 처마까지는 모로단청을 하였다. 건물 전면의 각 칸에 청판을 단 띠살창의 이분합문을 달았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닫집은 간략화 했으며, 중앙에는 지장보살을 비롯한 십대왕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우측에는 담을 두르고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응향각은 요사채로 남향을 하고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전후퇴집으로 홑처마의 맞배지붕과 남쪽과 북쪽에 정면을 두고 담으로 외곽을 둘렀다. 담 너머 보이는 이 건물은 북쪽으로는 낮은 외벌대의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고, 머리기둥에는 우미량과 장혀받침 납도리를 결구하여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민도리 건물이다. 특이한 점은 천장을 낮게 하고 동자주를 높게 하여 서까래의 천장 사이를 드나들게 하였다. 남쪽 면은 외부로 통하게 되어 있고 기둥 사이로 소로를 놓았고, 기둥에는 초익공으로 결구하였다. 전체적으로 건물이 풍기는 모습은 일반 가정집과 같은 모습이다. 

팔상전과 불조전 조사전을 관리하는 스님이 기거한다고 해서 붙어진 삼전은 스님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겹처마 건물이다. 측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을 막게 하였다. 낮은 두벌대의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두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건물 뒤쪽에는 좁은 쪽마루를 달았다.

▲ 팔상전     © 정진해

삼전 앞에는 팔상전과 불조전, 조사전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전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를 모신 전각이다.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숙종 24년(1698)에 다시 지은 후 순조 24년(1824)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건물이다.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다포계 건물이다. 원래는 주심포계 건물이던 것을 수리하면서 다포양식으로 바뀌었다.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을 초석으로 놓고 둥근기둥을 세우고 측면의 두 기둥만이 네모기둥을 세웠다. 내부의 대들보 위에는 널판으로 천장을 가설하였고, 불단 위에만 우물천장을 하였다. 문은 빗살문으로 중앙 3칸에는 2분합의 문을 달았고 측면에는 1짝의 문을 달았다.

내부에 팔상도 외에 도선·서산·무학·지공·나옹 등 우리나라 고승과 33조사들의 영정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조선후기 1780년의 작품인 화엄경변상도가 있는데, 화엄경의 내용 가운데 7처9회의 설법장면을 그린 것이다. 화면의 윗부분인 하늘에는 4회의 설법장면을, 지상에는 5회의 설법장면을 수미산의 형태로 배치되고 그 사이에 구름과 분신물을 표현하였다. 그 밑에 찰종이라는 글씨와 큰 연못을 그려 넣었다. 화면의 가장 아래에는 선제동자와 53선지식을 찾는  장자의 구도자 모습이 질서 있게 표현되어 있다. 청색과 홍색, 녹색을 많이 사용하여 색채가 강렬해 보이고 선명하지만 다소 어두운 느낌을 준다.

▲ 불조전     © 정진해

팔상전 옆의 불조전은 1761년에 중창된 건물로, 과거 7불과 미래의 53불 즉 60불을 모시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팔작지붕으로 주심포 형식에 익공 형식을 가미한 건물이다. 높은 축대를 쌓아올린 곳에 외벌대 기단을 두르고 덩벙주초와 잘 다듬어진 원형초석을 혼합하여 사용하고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다. 각 칸에 2분합 빗살문을 달았으며 중간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니 통칸으로 외진칸의 평주위에 주두를 놓고 그 위에 직접 장혀받침 대들보를 걸쳤고, 대들보 위에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중앙에는 동자주를 두어 층단천장을 꾸몄고 천장 위에는 자라, 물고기, 모란 등을 조각하여 붙였다.

▲ 조사당     © 정진해

조사당은 달마대사, 육조혜능, 마조도일 등 중국의 5대선사의 진영과 태고종의 종조인 태우보우국사, 선암사의 선을 널리 알린 침굉현번선사진영이 모신 전각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작은 전각은 자연석으로 된 기단에 외벌대로 둘렀다. 초석은 장대한 자연석으로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다. 지붕 맞배집으로 겹처마를 하였고 측면에 풍판을 달았다. 문은 빗살문으로 정면 중앙에 2분합문을 달았다.

▲ 원통전     © 정진해

원통전은 주원융통한 자비를 구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곳은 관음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전각으로 일명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이 건물은 숙종 24년(1698)에 중창 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2차에 걸쳐 중창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1923년에 재중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T자형 건물로 정면에 기둥과 활주를 내어 처마선을 길게 돌출시켜 내진과 외진으로 나뉘어 내진 안쪽을 불단을 만들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전면에 축대를 쌓고 양 면과 후면은 외벌대로 둘렀으며, 초석은 덤벙주초와 원형 다듬돌로 놓고 그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보가 없는 무량구조이며 천장은 우물반자로 짜여 있다.

‘인(人)’, ‘천(天)’, ‘대복전(大福田)’이라는 글씨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글씨는 순조의 친필이며, 정조임금이 후사가 없자 선암사 원통전과 대각암에서 100일 기도를 하여 순조를 낳자 금병풍, 은향로 등을 포함하여 선암사에 하사한 것이라 한다. 지붕은 전면의 돌출로 합각이 3곳인 팔작지붕으로 겹처마로 지어져 있다.

원통전 오른편의 첨성각은 스님들이 별이 보이는 새벽에 일어나 수행을 열심히 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전각으로 1780년에 중창되었고 1860년에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원통전을 관리하는 스님이 사는 요사체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정면 2칸, 측면 4칸의 홑처마에 왼쪽은 맞배지붕이고 오른쪽은 우진각지붕을 가진 특이한 지붕구조 건물이다. 낮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장경각은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서고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원래는 성수전으로 왕시의 명복을 기원하는 전각이었다고 한다. 장대석으로 정면에 세벌대, 측면은 외벌대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어칸부분의 소맷돌 부분에 해태와 사자모양을 조각하였으며 매우 흥미로움을 느끼게 하였다. 창문은 2분합 빗살문을 달았다.

▲ 선암매     © 정진해

원통전을 돌아 넝쿨이 덮어있는 담 앞에는 선암사 선암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내에는 수령 350~650년에 이르는 매화나무 5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담장을 따라 23그루 매화나무는 3월 말경에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다. 이들 매화나무를 가리켜 선암매라고 부르는데, 높이가 5~12m까지 다양한 높이를 갖었다. 이들 중 흰 매화 1그루와 분홍 매화 1그루는 아름다운 수형과 양호한 수세를 보이고 있다.

▲ 무우전     © 정진해

무우전과 각황전이 함께 한 구역 내에 있는 입구에는 자그마한 출입문이 있다. 대문의 현판에는 “한국불교태고종 종정원”이라고 쓰여 있다. 간단한 메모지에는 ‘약사여래 기도자는 벨을 누르십시오’라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무우전은 단청도 하지 않은 양반집을 연상하면 딱 맞는 건물이다. 정면이 8칸반, 측면은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양측면의 날개는 맞배지붕이다.

▲ 각황전     © 정진해

뒤편에 있는 각황전은 전남문화재자료 제177호로 지정된 건물로 본래의 이름은 장육전이었다. 신라 경문왕 원년(861)에 도선국사가 이곳에 터를 잡고 초창했다는 설이 있고, 고려 선종 9년(1092)에 대각국사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 중창 등을 거듭하면서 1835년에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면 1칸, 측면 1칸의 작은 규모로, 팔작지붕에 겹처마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대들보가 없는 구조이며, 천장에는 우물반자가 짜여 있다. 다포 양식으로 외2출목이나, 내부에는 출목이 없다. 그래서 첨자가 연결된 가늘고 긴 부재의 끝을 직각으로 잘라 층으로 쌓아 올린 것이 특이하다. 창호는 정면에 쌍여닫이문과 양측 면에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불단에는 각황전을 처음 지었을 당시 만들었던 철불을 1900년경에 석고로 도색하여 봉안하고 있다. 이 철불은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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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07 [09:42]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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