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회·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우리는 베네치아로 간다.
[연재-60회] 이병창 교수의 유럽철학기행
 
이병창 교수 기사입력  2017/04/02 [23:42]

유렵철학기행 5월 11일 베베네치아1

1) 타르비소 령

드디어 이탈리아로 넘어간다. 프랑스에 스페인, 독일 중부를 거쳐, 프라하를 돌아 비엔나로 내려온 우리는 내친 김에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가기로 했다. 괴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떠나 이탈리아에서 영혼의 새로운 힘을 얻었다 한다. 괴테의 나이와 비교해 보면 우린 너무 늦었지만 혹 모른다. 늙은 나이에도 새로운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탈리아가 마침내 눈앞에 있다니 짜릿한 흥분이 느껴진다. 우리는 아침 새벽 호텔을 나와, 비인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직행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유럽에서 이탈리아로 들어가려면 알프스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럽으로 들어올 때 비행기에서 보았던 알프스는 이탈리아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까지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다. 우리가 지금 넘어가는 길은 그 가운데 가장 왼쪽에 있는 길이다. 이 길을 통해 알프스에 오르면 봉우리 사이에 령 마루가 나온다. 우리는 이곳 령 마루에 있는 휴게소에 잠시 차를 세우고 알프스의 아침 차가운 공기를 마셔보기로 했다.

▲ 령같이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게 령이다. 여기 령 마루 휴게소가 있다.  © 이병창

이 령 마루는 타르비소 령이라 한다. 유럽 역사에서 유명한 전투가 치러졌던 곳이다. 프랑스에 혁명이 일어나자, 반혁명 신성동맹이 맺어졌다. 혁명정부는 신성동맹의 맹주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를 정벌하기로 했다. 혁명정부는 이름 없는 포병 중위 나폴레옹을 택해 오스트리아의 배후를 공격하는 임무를 맡겼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 서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동북부는 베네치아의 영토이었고 베네치아는 반혁명 전쟁에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혁명정부는 일종의 리베로 정도로 간주했으나, 나폴레옹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이태리 서북 지역(사보이 공국, 밀라노 공국)을 전광석화처럼 장악한 다음 베네치아에게 오스트리아로 쳐들어가는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한때 거대한 해상제국을 이루었던 베네치아는 기울고 있었으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폴레옹은 일단의 부대를 보내 먼저 이 타르비소 령 마루를 장악했다. 본국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스트리아로 되돌아가던 군대를 타르비소에서 막은 다음 나폴레옹은 본진을 끌고 오스트리아 군대를 뒤꽁무니를 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군대는 앞뒤에서 포위된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그 전투가 바로 타르비소 전투이니 나폴레옹을 유럽 역사에 등장시킨 전투였다.

나폴레옹은 중세 기사도의 세계에서 상상하지 못하던 전쟁 비리를 저지른 셈이다. 중립국을 협박해서 안심하던 적의 배후를 공격했으니 말이다. 나중에 히틀러가 이차세계 대전에서 중립국 벨기에를 공격해서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돌파했던 전략과 기막히게 일치한다. 오늘날 미국이 한국을 협박해서 사드를 배치하면서 중국을 장악하려 하는 시도도 여기서 나온다.

2) 사두마차 상(quadriga)

나폴레옹 때문에 엉뚱하게도 몰락한 것은 베네치아이다. 나폴레옹은 타르비소에서 승리한 이후 곧 베네치아를 장악해버리고 말았다. 길을 빌려준 나라를 도둑질하고 만 것이다. 그는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고 거기서 한 수 더 떠서 베네치아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훔쳤다. 그 보물은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될 성 마르코 성당에 세워져 있던 사두마차 상(마차는 사라지고 네 마리 말만 남아 있다)이다. 나폴레옹은 이를 약탈해서 프랑스로 가져갔다. 그는 자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나중에 불 타버린 뛰일리 궁 앞에 카루젤 개선문을 세웠다. 그는 그 위에 이 사두마차 상을 올려놓았다.

하기야 베네치아도 할 말은 없다. 베네치아 역시 이 사두마차 상을 훔쳐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폴레옹만큼이나 야비한 방식으로 말이다. 12세기 해상 제국인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군을 실어주고 톡톡히 돈을 벌었다. 그런데 4차 십자군은 돈이 없어서, 배 삯을 지급하지 못했다. 그러자 베네치아가 유럽의 십자군 제국을 은밀하게 유혹했다. 

▲ 이게 앞으로 볼 성 마르코 성당이다. 정문 아치 포치 위에 네마리 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수 있을 것이다. 이건 복제품이고 원본은 수장고 안에 있다고 한다. 앞에 사진에 보이는 분이 홍교수이다.   © 이병창

당시 베네치아는 자기의 종주국인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을 습격해서 약탈하자고 제안했다. 십자군은 자기가 십자군이라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베네치아와 함께 비잔틴 제국을 약탈했다. 그 덕분에 베네치아는 에게 해 연안의 수많은 그리스 도시들을 식민지로 거느릴 수 있었다. 그때 베네치아가 자기의 승리(? 사실은 약탈)를 기념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 이 사두마차 상이다. 이 상은 원래 로마 황제 세베르투스가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한 다음 콘스탄티노플에 세운 개선문 위에 있었던 것이라 한다.

사두마차 상은 지금은 다시 베네치아 성 마르코 성당에 있다. 곧 우리가 보게 될 것이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오스트리아가 베네치아에 돌려준 것이다. 그럼, 베네치아는 나폴레옹 몰락 이후 정의를 다시 되찾았던 것인가? 천만에, 그렇지는 않다. 오스트리아는 그 대신 베네치아를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었고 이것으로 천년에 걸친 해상제국 베네치아가 끝나고 말았다. 베네치아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국가의 생명을 저 사두마차 상과 바꾼 것이니, 얼마나 엄청난 사두마차 상인가?

오늘날 카루젤 개선문에도 사두마차 상이 있다. 이것은 나중에 프랑스가 스스로 제작한 것이다.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사두마차 상을 세우는 관습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1870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 역시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사두마차 상을 세웠으니 그것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놓인 사두마차 상이다.

3) 해상제국

역사의 비극을 직접 겪은 사람의 마음이야 어떻든 역사는 우리에게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 알프스를 넘으니 널찍한 평원이 나온다. 이 지역이 베네토 지역이라 하며, 이 지역 원주민은 베네티 족이라 한다. 이 베네티 족에서 베네치아라는 도시 이름도 나왔다. 이 지역은 게르만족이나 훈족의 침입이 잦았다. 그 때문에 베네티 족은 베네치아로 기어들어왔다. 베네치아는 바다 한 가운데 흩어져 있는 섬들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여기에 방책을 쌓고 운하를 파서, 저항했으니 당시로서는 안전했던 모양이다.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피한 고려인의 전략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곳이 천년 해상제국의 기원이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동고트 족에 의해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서로마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568년 게르만의 일족인 롬바르드 족이 재차 침입하자, 나머지 동로마 영토는 모두 사라지고 오직 베네치아만이 바다라는 요새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726년 도시민의 신앙이 그리스 정교회에서 가톨릭으로 변화하면서, 민중의 반란이 일어나 동로마가 파견한 총독을 거부하고 공화정을 세웠다. 동로마는 베네치아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었다.

프랑크 족의 샤를마뉴 대제가 유럽을 통일하자, 810년 그의 아들 페펭이 베네치아를 공격했다. 베네치아는 6개월간의 포위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아 저항할 수 있었다. 이 싸움 덕분에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의 영토(물론 자치도시)로 인정받고 동시에 아드리아 해의 해상 무역의 독점권을 획득했다.  

나는 일본의 역사학자 시오노 나나미가 지은 <베네치아 공화국>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의 귀족 출신이고, 민주주의를 싫어하며 귀족 공화국을 이상적인 사회로 간주하는 학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귀족 공화국의 대표적인 예를 베네치아에서 발견했다. 공화정이므로 민중을 위한 것이 될 수 있고 귀족은 지혜를 가짐으로 나라를 더 잘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 Giovanni Battista Tiepolo가 그린 그림. 그림에서 삼치창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의미한다.  그가 저렇게 많은 돈을 베네치아에게 바치며 애원하고 있다. 무얼 애원하는 건지...그 옆에 사자는 유래가 있다.         ©이병창

이런 귀족 공화국이라는 개념의 원형은 사실 플라톤에서 나온다. 플라톤의 철인 공화국이 바로 그런 개념이다. 플라톤은 철인 공화국의 실제 역사적 예를 스파르타라는 나라에서 발견했다. 그는 스승 소크라테스처럼 자기 나라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싫어했다. 하지만 플라톤도 그렇고 시오노 나나미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은 귀족 공화국이 타락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스에서나 중세 이탈리아에서 참주 정치가 발전했다. 참주란 공화정의 대표를 돈으로 산 사람을 말한다. 그게 타락한 귀족 공화정이다. 

베네치아가 천년 해상제국을 건설한 것이 정말 이런 귀족 공화국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오히려 베네치아가 아드리아 해의 해상 무역권을 독점하면서 이로부터 쌓은 부가 원천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베네치아가 18세기 들어와서 몰락한 것은 유럽이 지중해 무역에서 대서양 무역으로 전환하면서부터였으니, 아무리 귀족 공화정이라도 그런 몰락을 막지는 못했다. 대서양 무역으로 스페인, 영국, 네델란드가 성장하자, 천년 해상제국 베네치아도 몰락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폴레옹으로부터 사두마차 상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7/04/02 [23:42]  최종편집: ⓒ wngo
저작권자(c)한국엔지오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병창 교수의 유럽철학기행. 베네치아. 삼두마차상. 신성동맹. 해상제국. quadriga.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