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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이 없다”, 그 틈에 관하여
이 솔 시인
 
이 솔 기사입력  2017/03/29 [15:44]

“빈틈이 없다”는 말은 야무지고 똑똑하여 매사에 틀림이 없고 모자람이 없다는 뜻이다. 단단히 익어서 제 맛을 낼 때, 살아가면서 하는 일마다 어긋남이 없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편안하여 자신감을 가진다. 매사에 모자람이 없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최상의 조건들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과 현실은 일치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에 우리는 체념적 위로를 안고 내일을 향해 나간다.

“빈틈 없다”는 상황은 깔끔하고 산뜻하다. 쌓인 설거지감을 깨끗이 씻고 물기를 닦고 가지런히 하고 도마는 씻어 햇볕에 내놓고 행주 삶아 널어 마무리 하면 빈틈 없는 며느리 소릴 들을 것이다. 그러나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 칼에 손이 베이고 그릇을 깨뜨리면 눈살 찌푸리는 소리를 듣는다. 빈틈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책망의 소리가 지나면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다. 함께 해결의 방법을 찾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할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  “빈틈이 있(많)다”도 설 자리가 필요하다. 빈틈이 많다고 너무 자책함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 우리는 대부분 모자람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파산을 당한 부모는 가족을 위해 어려움을 해결하려 전전긍긍한다. 최악의 상황도 생각하고 최소한 생명을 유지하며 몸의 일부 신장 하나쯤(가족을 지키기 위해) 내 놓을 수 있다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 대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 좌절하고 허리띠를 조이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한다.

경제적 타격으로 가족 간의 갈등이 겹쳐지고 미처 살피지 못한,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친다. ‘내가 무심하고 부족했어’하는 후회와 역설적으로 가족은 더 굳게 뭉치기도 한다. 어려움이 약이 되는 일에 감사하기도 한다. 실패한 삶의 사례를 보면서 “빈틈이 없다”에 대한 컴프렉스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어 다행스러울 때도 있다. 

“빈 틈이 없다”는 물샐 틈 없어 한 방울의 물도 새지 않는다. 나갈 수도  없다. 완전무결한 미인이 오히려 시샘을 받듯,  잠시의 실수를 허용받지 못하는 “빈틈 없음”이 오히려 속박이 되기도 한다. 100% 완전함도 빈틈이 많은 부족함도 상황에 따라 각각의 값을 치른다. 절대적이어야 하는 기준이 실상에서는 상당히 어려울 때가 많다.  물샐 틈 없어 비집고 나갈 수 없고, 들어가고 싶어도 도저히 들어갈 수도 없는 ‘빈틈’의 무게는 글자 그대로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하여 빈틈이 많다함은 채울 무언가의 나머지 여유, 여지가 허용되는 상황이다. “빈틈 없음”은 더 들어갈 여분이 없는, 생각이나 마음 씀씀이 여지 없이 냉정하다는 말이 된다. 빈틈이 없으므로 남의 말을,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부족함에 대한 이해심이나 측은함을 거부한다. 사회적 관계의 폭이 좁아지게 되고 소통의 따뜻함이 어려워 진다. ‘빈틈 없음’은 꽉찬 상태이기에 더 좋은 일도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하다. 물이 가득찬 물병을 얼리면 팽창하여 병이 깨지고 만다.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서로 안아주기엔 양 팔을 겹쳐 끌어 안을 공간이 필요하다.

“빈틈이 많다.”는 상황은 부족함을 더 많은 것들을 불러 모아 채우려고 한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실패를 내 보이고 조언을 구한다. 나를 내려 놓고 너를, 모두를 받아 안는다. 채워짐에 감사한다. 참으로 상대를 사랑하게 된다. 넓은 아량으로 시야를 넓힌다. 수평적 관계로 함께 하는 오늘을 감사한다. 보이지 않던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에 머물던 눈이 내일을 향하여 자신있게 나아갈 수 있다. 수용의 문제다. 수용의 유연함, 너와 내가 함께 할수 있는 장(공간)이 될수 있다.

빈틈없이 살기도, 빈틈이 많아 최선을 다하기에도  노력해야 하는 삶, 각자의 상황을 정정당당히 마주하고 자신을 바로 보고 이웃을 돌아보고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생활인), 빈틈을 관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세상 모든 생명을 고루 안아주고 잘나고 못남을 큰 눈으로 살펴 볼 수도 있는,  더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있음과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음의 틈을 더 넓혀 가는 일이 새삼 큰 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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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9 [15:44]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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