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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의 꽃이 피고 학이 나는 절집 조계산 선암사(3)
 
정진해 문화재 전문위원 기사입력  2017/03/24 [17:35]

문화재 :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보물 제1311호)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죽학리)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고 사천왕상이 없다. 조계산 주봉인 장군봉의 기운이 강해 굳이 사천왕상을 세울 필요를 느끼지 않아 사천왕문을 세우지 않았다고 번한다. 범종루를 지나면 대웅전과 다른 적각,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 매화나 등을 볼 수 있다.

▲ 선암사 범종루     © 정진해

2층의 누각의 범종루 전면 상부에는 ‘太古叢林曺溪山仙巖寺’라는 현판의 걸려 있는데, 이 글씨는 현대의 명필가이면서 순천시민인 목인 전종주가 쓴 글이다. 전라도 지방에서 보기 드문 누하 진입이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범종루는 불전사물(범종, 운판, 목어, 법고)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 하고 한다. 사물은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 저녁예불 때에 사용한다. 사물은 소리로서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데, 범종은 청정한 불사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위하여 불음을 전파하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범종은 신라 경덕왕이 754년에 황룡사에 큰 종을 주조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남아 있는 종은 상원사 동종(725년)과 성덕대왕신종(771년)이 남아 있다. 법고는 축생을 제도하는 상징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예불 시작 전에 법고를 먼저 치고 그다음에 범종, 목어, 운판의 순으로 친다.

법고는 법을 널리 알리는 ‘북’이라는 의미로 북소리가 널리 퍼져 번뇌를 물리치고 모든 중생을 깨우치는 의미가 있다. 목어는 수중에 있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의구이다. 목어를 휴대용으로 변형시킨 것이 목탁이다.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제도하는 의구이다. 운판은 해와 달, 티베트 범자, 보살 등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 선암사 범종루     © 정진해

선암사의 범종루는 1935년 10월 18일에 건립되었는데, 처음에는 영성루라고 하였으나 불기운이 가장 강한 남쪽 방위에 자리하고 있어 범종루로 개칭하였다. 범종루 옆에는 1935년 지은 범종각이 범종만 별도로 이곳에 달아 놓았다. 화강암으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세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으로 겹처마 건물이다.

전남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선암사 해우소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다. 一 자형 건물의 북측 중앙에 출입용 입구를 맞배지붕을 붙여 전체의 구조가 T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목재를 이용하여 지은 건물로 불편해 보이지만 내부의 구조가 매우 편리하게 할용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선암사 해우소     © 정진해

지면에서 높아 악취가 풍기지 않고, 통풍이 잘 되도록 전후에 살창을 두었고, 바닥은 틈 없이 잘 짜여있으며 남녀로 구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용무를 볼 수 있도록 2열로 배치한 것이 이채롭다, 또한 해우소에서 나온 분비물은 모두 퇴비로 사용하여 자연친화적인 화장실로 꼽히고 있다. 이 건물이 정유재란에도 타지 않고 그대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해우소이다.

범종루로 들어서면 만세루가 자리하고 있다. 처마 밑에는 “육조고사(육조고사)하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글씨는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의 글씨인데, 육조고사의 육조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선종을 처음 전한 ‘달마’로부터 여섯 번째, 그 선종을 이어온 혜능을 일컫는데, 그는 중국 조계에서 그 선법을 널리 선양했다. 육조고사란 혜능의 옛 절이란 뜻이다.

▲ 선암사 만세루     © 정진해

만세루는 수많은 학승들이 여기서 강학을 하였던 건물로 1824년 해붕, 눌암스님이 중창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서 초기 가람배치 형식에서 대웅전 뒤에 있어야 하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강당이 대웅전 앞에 위치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대웅전과 주축 선상에 누문을 두고 누문 밑으로 진입하여 대웅전 마당에 이르게 하나 이곳 선암사에서는 누의 좌우로 돌아가서 오르게 하였다. 외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우고 굴도리를 얹어 가구를 짰다.

대웅전 앞 좌측에 있는 심검당은 1825년에 중건하여 처음에 하성원으로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스님들의 강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스님들의 수행공간이고 2층은 수장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웅전 뜰에서 보면 일층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지붕 밑 대공이 있는 공간까지 하면 3층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곳 공간은 외부인이 들어다 볼 수 없고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팔작지붕의 건물은 ㅁ자 구조를 지닌 건물은 건물과 건물이 붙어 사당이 꽉 막혀 있는 폐쇄형 구조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부엌이지만 이 또한 안으로 들어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외부를 싸고 있는 벽면은 외벽에 새겨진 문양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수(水)와 해(海)이다. 물건을 놔두는 다락에 공기가 통하게 뚫어 놓은 작은 창인데, 이 창을 한문으로 수와 해의 문양을 만들어 단 것은 선암사가 불이 자주 나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는 비보의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일주문에 단 현판에서도 ”청량산 해천사‘라는 옛 사찰명도 이른 이유 역시 불(火)과 관계가 있다 하겠다.

심검당에는 水와 海 외에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부엌문 위 벽에 하늘 天 건(乾☰)괘와  물 水 감(坎☵)괘가 옆으로 나란히 뚫린 환기공이 있다. 부엌 연기가 빠져나갈 통풍구 역할 외에 건괘는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는 생명력의 근원이라면, 감괘는 빠진다는 의미를 가지니, 수행함에 있어 포기하지 말고 굳세게 정진하라는 의미로 건괘와 감괘를 출입구에 새겨 넣은 것 같다.

▲ 선암사 대웅전     © 정진해

대웅전 앞에는 2기의 삼층석탑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모두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규모와 수법이 같은 석탑으로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하층기단은 넓은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데 4ㄱ의 장대석으로 구성되었다. 기간의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를 새기고 각각의 기단의 윗면에는 굴곡을 이룬 굄돌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다.

▲ 선암사 동서삼층석탑     ©정진해
 
하층갑석의 윗면은 약간 경사가 져 있으며 중앙에는 3단 굄이 상층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의 각 면에도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으며 상층갑석은 하층갑석과 같이 밑에는 부연이 있으며, 비스듬하게 경사가 져 있는 윗면 중앙에는 3단 굄이 모각되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고, 몸돌 모서리에는 우주를 새겼으며 지붕돌 밑에는 수평이고 4단의 층급받침을 두었다. 지붕돌 위에는 2층의 굴곡을 이룬 굄이 있어 특이한 형태이다.

▲ 선암사 서 삼층석탑(왼쪽)과 선암사 동 삼층석탑 (오른쪽)     © 정진해

상륜부에는 노반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원형의 작은 석재를 올렸는데 원래 석탑의 것인가는 확실치 않다. 1986년 8월에 탑을 해체 복원할 때 동탑의 몸돌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사리장엄구로 청자항아리, 백자 항아리 각 1점과 사리 장치로 금동사리탑과 수정 용기, 사리 1과 등이 출토되었다.

두 기의 석탑 사이에는 석등이 있어야 하지만 선암사에는 석등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선암사는 풍수에 의하면 화재에 취약하기 때문에 불을 상징하는 석등을 만들지 않았는데, 그 대신 건물에 水, 海, ☰, ☵의 문양으로 대치하였기 때문이다.

심검당과 마주 보는 설선당은 1825년에 심검당과 함께 중건했음을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만일염불을 했던 염불원이 있었던 건물로서, 지금은 행자들의 교육과 생활을 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덤벙 주초를 놓고 원기둥을 세우고 초익공 형식을 갖춘 단출한 건물이다.

심검당과 같이 맞배지붕이 이어져 口자를 이루고 중앙에 자그마한 마당이 있어 개방적인 느낌을 받으나 외부는 문이 별로 없어 폐쇄적인 느낌을 받는다. 심검당 같이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어 1층은 스님들이 기거하고 2층은 수장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 선암사 대웅전     © 정진해

두 기의 석탑을 바라보고 있는 대웅전은 1147년에 기록된 <조계산 선암사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 의하면, 원래 미륵전으로 2층 중층건물이었다.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소실된 후 현종 원년(1660) 경잠, 경준, 문정의 3 대사가 주축이 되어 중수하였는데 1759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1760년에 상월, 서악 등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1823년에 화재로 소실되자 1824년에 또다시 중건한 건물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중앙에는 넓은 계단과 좌우에 좁은 계단을 두었으며, 낮은 기단 위에 주좌가 뚜렷한 원형 초석을 놓고 배흘림 원형기둥을 세웠다. 이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다포식의 팔작지붕으로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배치하고 그 위로 공포를 짜 올렸으며 출목수는 외삼출목, 내사출목으로 매우 화려함을 주고 있다.

전면 3칸, 측면 3칸의 내4출목 건물로, 천정은 층층이 들여쌓아 밀어 올린, 3개 층의 층급 우물천정이다. 중앙부 내진영역의 천정을 가장 높이 경영한 형태다. 천정에는 학(鶴) 문양과 기하적인 배열로 도식화된 8엽연화문을 가득 채웠다. 학 문양은 우물반자 세 칸 폭으로 사방면에 조성한 하층천정의 가장자리 한 줄에만 배열하였고. 사방 가장자리 우물반자에는 마치 범자로 결계를 치듯 학 문양으로 신성한 사각 틀을 이룬 후, 그 내부에 8엽연화문으로 배치하였다. 대웅전의 현판은 조선시대 신권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초를 열었던 선조의 장인인 김조준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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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4 [17:35]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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