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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이 품은 삼인당에 그림자 비친 선암사(2)
 
정진해 문화재 전문위원 기사입력  2017/03/17 [14:48]

문화재 : 선암사삼인당(전남기념물 제46호)  
           선암사일주문(전남유형문화재 제96호) 
           선암사중수비(전남유형문화재 제92호)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48-1번지
 


승선교를 건너면 강선루 앞에 이른다. 여기부터 조계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선암사의 경내가 시작된다.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지에 해천사(海川寺)를 창건하고 둘러싼 산을 청량산이라 하였다. 그 뒤 도선국사가 지금의 가람 위치에 중창하면서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고, 훗날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를 중창하고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는 호남의 중심사찰 되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에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탑,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변소)만이 남았는데, 8년에 걸쳐 원래의 모습으로 중창하였다. 1698년에 원통전, 1703년 오십전으로 중건하였으나 1759년 대화재로 만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영조 27년(1761)부터 시작된 중창은 순조 19년(1819)에 조계산을 청량산이라 하고 해천사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

그 후에도 화재로 인해 전각들이 소실되면서 순조 24년(1824)부터 헌종 10년에 걸쳐 천불전이 중수되면서 청량산은 다시 조계산으로 하고 해천사를 선암사로 부르게 되었다. 해방 후 선암사는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으로 또 한 차례 피해를 보았으나 6차에 걸친 중창의 모습을 잘 유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19년 본발사법에 의하여 전국사찰을 30본산으로 지정했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순천, 여수, 광주지역의 사찰을 관장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태고종의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서 종합수도 도량이며, 선암사는 차(茶)로도 유명하다.

선암사(仙巖寺), 승선교(昇仙橋), 강선루(降仙樓)는 신선과 연관을 지어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 선암사는 장군봉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바위가 있어 붙어진 이름이고, 승선교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골짜기에서 놀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름이 아닐까 한다. 또한 강선루는 네 기둥 중에서 대각선의 두 다리가 바닥까지 내려가게 한 것은 하늘의 신선들이 강선루로 내려와 계단과 기둥을 타고 아름다운 개울가에 다다를 수 있게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강선루는 2층 누각에 오르는 계단과 8각의 돌기둥 두개가 개울에 닿고 있다. 이곳부터 선암사의 실질적인 영역으로 모든 사람은 이 문을 통해서 출입이 된다. 1층은 정면과 측면이 1칸으로 되고 2층은 정면 3칸과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찰의 누문은 일주문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의 문루는 계곡과 주변의 수목이 어우러지게 자리 잡은 것이 특징이다.

2층에 걸려있는 “降仙樓” 편액은 근세의 명필가였던 성당 김돈희의 글씨이다. 성당 김돈희(1871~1937) 선생은 법부 주사와 검사를 거쳐 중추원 촉탁의 벼슬을 지낸 근대 서예가이며 1910년 한일변탄조약문을 썼으며, 1919년 서화협회 13인의 발기인으로 제4대 서화협회 회장과 조선미술 전람회 서부(書部) 심사위원으로 지냈었다. 선생이 사찰에 남긴 편액으로는 양양 낙산사 <의상대>, 해남 대둔사 <용화당>, 순천 선암사 <강선루>, 구례 천은사 <방장선원>, 곡성 태안사 <동리산태안사>, 김제 금산사 <용화지회>, 밀양 표충사 <대광전>, <약산초제>, 상주 남장사 <불이문>, 김천 청암사 <불영산청암사>, <대웅전>, 대구 파계사 <팔공산파계사> 밀양 오연정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편의 편액은 일제 강점기의 때의 이조판서를 지낸 석방 윤용구(1853~1936)의 글씨이다.

강선루를 지나 숲이 우거진 조계산 계곡을 보라다 보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태평스럽게 다람쥐가 먹이를 먹을 만큼 평화로운 서정이 피어오르는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선암사 삼인당(三印塘)’라고 한다. 연못은 장방형의 타원형으로 연못에는 둥근 섬이 반영에 비쳐진 모습이 매우 독특하다. 가지런히 크고 작은 돌을 몇 층으로 쌓고 그 주위를 오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돌과 돌 사이에는 양치식물이 틈틈이 잎을 피우며 자란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계속 연못에 담고 한쪽으로는 담긴 물 만큼 빠져나가고 있다. 이 연못은 전남기념물 제46호 지정 보호되고 있다.

선암사 사적에 따르면 신라 경문황 2년(86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못의 장타원형 안에 있는 섬은 ‘自利利他(자리이타)’, 밖의 장타원형은 ‘自覺覺他(자각각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삼인(三印)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淨印)의 삼법인을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것은 원하여 머무른 것은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 라는 불교사상을 나타낸 뜻을 가진 연못이다.

선암사에 많은 비가 내리면 그 물이 갑자기 불어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이 연못이 있어 수위의 완급을 조정하는 역할까지 담당하는 연못이다. 연못 주위에는 수십 척의 삼나무와 아름드리 활엽수들이 도열해 있다. 연못은 이들 마무에게도 골고루 살아갈 수 있는 생명수를 나누어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암사를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나무들은 서로 호흡을 함께 하며 정담을 나눈다.

▲ 선암사 일주문     © 정진해

물이 흘러가는 도랑은 일주문에 이르고, 대나무를 촘촘히 역은 울타리를 따라 걷다보면 또한 일주문에 이른다. 일주문 앞에 몇 백 년의 삶을 바친 고목에는 불자들이 남긴 동전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붙어 있다.

일주문 계단을 오르면 좌우의 소맷돌에 큰 이빨을 드러낸 흉악스러운 석수상이 사악한 무리들의 침입을 또 한 번 걸러내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일주문 앞에는 향교에서나 볼 수 있는 하마비가 세워져있다. 사찰에 하마비는 짊어지고 있는 온갖 욕심을 이곳에서 모두 내리고 텅 빈 마음으로 오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 선암사 일주문     © 정진해

아홉 계단을 오르면 일주문 얼굴에 ”曺溪山仙巖寺“ 현판이 걸려 있다. 일주문은 전남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축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서 불에 타지 않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이루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산문 중 한 쪽에 하나의 기둥만 세우는데서 부르게 된 문으로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 안을 진계라 하고 문밖을 소계라고 한다. 이 문을 들어설 때 오직 일심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마음을 촉진 시키는데 그 뜻이 있다. 누구든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이 새워진 것이다.

▲ 선암사 일주문     © 정진해

빼곡히 짜인 공포가 매우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고 내부에는 좌우에 버티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이 또 한 번 사악한 무리들의 침입을 막고 있다. 강희 18년(1719)에 기록된 ‘曹溪門重創上樑門’에 조계문이 1719년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안쪽에도 ”古淸凉山海川寺“라는 편액을 걸었는데, 이는 옛 청량산 해천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1719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으면서, 1761년 상월스님이 청량산 해천사로 다시 바꿨다 한다. 이 글씨는 풍광산인 안택희사 썻다. 단층 맞배기와지붕에 외4출목의 다포식 겹처마건물이다. 덤벙 주초에 굵은 배흘림 원형기둥을 세우고, 좌우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을 막고 있다.

▲ 선암사 중수비와 사적비     © 정진해

경내에서 운수암 방향에 자리하고 있는 선암사 사적비와 중수비는 전나무 숲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전남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선암사 중부비와 1929년에 세워진 선암사 사적비가 나란히 자라한 두 비는 귀부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져 형제처럼 보인다. 중수비는 정유재란으로 불에 따버린 절을 약휴대사의 노력으로 절을 복원한 후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비문은 숙종33년(1707)에 문인 채평윤(1669~1731)이 글을 짓고, 숙종 때 함경도 관찰사 및 예조참판을 지낸 성재 이진휴가 글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 중수비 귀부(왼쪽)과 이수(오른쪽)    © 정진해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며, 귀부의 머리는 일반적 귀부에 비해 작은 편으로 입을 꽉 다물고 있으며 목이 매우 짧고 앞발은 앞가슴으로 모여 있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등에는 선명하게 새겨진 귀갑무늬로 덥혀있고, 중앙에 비좌를 마련하였다. 머릿돌 밑면에는 연꽃을 새겼고, 윗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키어 마주보고 있는 것이 살아 용트림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적비도 같은 형태의 귀부와 비신으로 만들어졌으나 머릿돌 밑면에는 꽃무늬를 새겼고, 윗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서로 엉키어 매우 역동적인 모양을 하고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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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17 [14:48]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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