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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왜의 속국’ 만들려고 기록까지 조작한 김현구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다』의 저자
 
황순종 기사입력  2017/03/14 [09:27]

▲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다』 저자
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28) 세 번째로 김현구가 백제가 왜의 속국이었다고 강조하는 근거는 ‘백제에서 왕자와 왕녀들을 왜에 인질로 보내 왜왕을 섬기게 했다’는 것인데, 그의 주장은 대부분 『일본서기』의 기록과도 다른 허위로서 도저히 학자라고 부를 수도 없는 억지를 부린 것이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당시 왜를 끌어들이기 위해 인질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한 직지왕(재위 405~419)이 그 누이동생 신제도원을 일본에 보낸 뒤 백제에서는 적계여랑·지진원 등 왕녀들을 잇달아 일본에 보낸다.…선진국에서 건너간 왕녀의 신분이었던 그들의 혼인 상대가 누구였는가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천황이 ‘지진원을 취하려 했는데 이시카와노다테와 관계를 맺었으므로 화형에 처했다’(유랴쿠천황 2년(457) 7월 조).…이렇게 해서 일본의 천황가에 백제왕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6쪽)   

“그런데 웅략기 5년(461) 조에는 옛날에는 여(女)를 보냈는데 무례하여 나라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므로, 동생인 곤지 즉 남자를 보내서 일왕(김현구는 반드시 천황이라고 쓴다)을 섬기게 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직지왕이 누이동생인 신제도원을 파견한 이래 461년 곤지를 파견할 때까지는 백제의 왕녀들이 왜에 파견되는 관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제도원·적계여랑·지진원 등이 그 왕녀들에 해당되는 것이다.”(『고대 한일교섭사의 제문제』, 167~168쪽)

김현구가 인용한 이런 내용들은 『삼국사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고 『일본서기』에만 나오는데, 더 큰 문제는 그의 말이 기록내용과 다르다는 데 있다. 원 기록과 다르게 왜곡 해석하여 자기주장에 억지로 맞추고 있는 것이다.

먼저, 백제에서 ‘신제도원·적계여랑·지진원 등 세 왕녀’를 왜에 보낸 것을 ‘일왕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일본서기』 오진(應神) 39년 2월 조에는 “백제의 직지왕이 그 누이 신제도원을 보내 임무를 맡겼다. 신제도원은 7명의 부녀자를 거느리고 왔다(百濟直支王遣其妹新齊都媛以令任. 爰新齊都媛率七婦女而來歸焉.).”는 내용이 신제도원에 대한 기록의 전부이다. 여기서 ‘영임(令任)’이란 ‘임무를 맡겼다’는 뜻인데 김현구는 이를 ‘천황을 섬기기 위해’라고 멋대로 다르게 왜곡 해석한 것이다.

또, 『일본서기』 유랴쿠(雄略) 5년 조는 “(백제의 가수리군은) 지진원[적계여랑이다]이 불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飛聞池津媛[適稽女郞也.]之所燔殺)”라고 하여 지진원이 곧 적계여랑이라고 주석하고 있는데, 김현구는 같은 사람인 적계여랑과 지진원을 두 사람인 것처럼 조작하였고, 더구나 지진원은 왕녀가 아니라 채녀(采女, 궁녀)였었는데 왕녀인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조작하였다. 결국 임무를 수행하러 간 왕녀 신제도원을 천황을 섬기기 위해 간 것으로 왜곡하고, 채녀 지진원(즉 적계여랑)을 왕녀로 조작하는 것도 모자라 그 숫자까지 늘린 것이다. 아마도 백제가 정성을 다해 일왕을 섬겼으며, 그것이 관행이었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서기』의 내용마저도 허위로 해석한 것 같다.


그리고 김현구는 왕녀만이 아니라 남자 왕족들도 ‘천황을 섬기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기술한다.

“한편 웅략기 5년(461) 조에 의하면 왕녀들 대신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곤지도 도일 목적이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의다랑이나 마나군·사아군 등은 곤지 파견의 연장선상에서 도일하고 있다.”(『고대한일교섭사의 제문제』, 169쪽)

여기서 곤지는 왕의 동생이므로 왕족이지만 의다랑과 마나군은 왕족이 아니다. 『일본서기』 부레쓰(武烈) 3년 조에, “백제 의다랑이 죽었다. 다카다 언덕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보일 뿐 왕족이라는 표현은 없으며, 7년 조에는 “지난번에 조공한 사신 마나는 백제 왕족이 아니다.”라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현구는 이런 기록을 무시하고 왕족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백제에서 왕족들을 주기적으로 보내 천황을 섬기는 관행이 있었다고 조작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김현구는 자신이 신봉하는 『일본서기』의 백제와 왜 관계 기록을 조작하면서까지 ‘백제가 일왕을 섬기는 것이 관행이었다’ 결론을 내려고 집요하게 노력한다. 그가 이렇게 억지를 쓰는 이유는 백제가 고대 야마토 왜의 속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발버둥 그 자체다.


한 마디로 ‘임나를 지배한 백제를 야마토 왜가 지배했으니 결국 왜가 임나를 지배했다’는 자기 스승인 식민사학자의 논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당구의 쓰리쿠션처럼 묘기를 부려 식민사학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실제로는 왜가 임나를 지배한 것으로 만들어 일왕에게 충성을 다한 것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나라 학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매국사학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 김현구의 쓰리쿠션 묘기  

김현구는 왜 이런 허구를 고집할까? 왜 그래야 하는가? 돈일까? 의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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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14 [09:27]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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