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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계곡에 그림자 비친 ‘선암사 승선교’(1)
 
정진해 문화재 전문위원 기사입력  2017/03/08 [09:24]

문화재 : 순천 선암사 승선교(보물 제400호)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48-1번지
 

▲ 선암사 가는 길     ©정진해
 
승주하면 소의 머리에 해당되는 형국의 지역이라고 한다. 순천시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고장으로 54개의 자연부락이 산간곡저를 흐르는 소하천 양안에 가옥과 농지가 밀접해 있는 고장이다. 승주 서평 삼거리에서 이시천을 따라 가다보면 상사호 첫 머리에 이르면 주변의 산이 물을 가두고 평화로운 산촌의 산과 물의 만남에서 잠시 발을 멈추게 한다. 다시 죽학리 마을에 들어서면 조계산 선암사계곡의 깊은 곳에서 스님의 염불이 은은히 울러 나온다. 이곳부터 선암사는 시작된다. 매표에서 사찰까지는 약 1km에 이르는데, 심심치 않게 갈 수 있는 마음의 길이기도 하다. 
 
선암사를 가려면 3종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3개의 길을 볼 줄 알아야 하고 3곳을 통과 하여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즉, 2종류의 소리는 계곡의 물소리와 숲의 새소리, 스님의 불경소리이고, 3개의 길은 계곡의 물 길, 걸어서 가는 숲 길, 숲 사이로 드러나 있는 하늘 길, 3곳을 통과해야할 곳은 부도전, 홍예교, 상선루이다. 이 모두는 조계산이 품고 있다. 계곡에 흐르는 물은 상사호를 향해 유난히 요란스럽게 흐른다. 조계산은 호남정맥의 명산으로 널리 알려져 오고 있다. 송광사와 선암사를 동서 양 기슭에 안고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아름다운 산이다. 꽃을 따라 걷는 시간은 아름다운 자연을 눈여겨보지 않아도 자연의 풍경이 만끽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물소리와 새소리는 야생초의 꽃잎을 춤추게 하고 걸음걸이는 그 박자에 맞춰가며 부지런히 걷다가도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노린재나무가 눈송이처럼 꽃을 피울 때, 어느새 바람이 불어와 꽃잎을 흩어지게 날리는 풍경을 보다보면 어느 새 부도전에 도착된다. 

▲ 선암사 부도전     © 정진해

빼곡히 자라는 전나무는 그 키가 하늘을 찌르고,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고승의 부도탑과 탑비가 선암사의 역사를 전한다. ‘曹溪山仙巖寺’ ‘禪敎兩宗大本山’이라는 표지석은 문지기처럼 세워져 있고 뒤로는 다양한 모습의 탑과 탑비가 일정한 간격에 맞춰 서 있다. 이곳에는 화산대사의 부도탑과 그 외 많은 스님의 부도탑이 있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기의 비석 중 7기의 비석은 종(縱)으로 세우고 1기의 비는 횡(橫)으로 새웠다. 이 비는 상월대사의 비로,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선암사에서 보냈지만 입적한 곳은 묘향산 보현사이다. 그가 입적한 후 수습된 사리 3과를 3곳에 부도를 세웠는데 그 중 1과는 선암사이며, 비석을 세울 때 비의 방향을 묘향산 보현사 쪽으로 향하게 했다고 하며 또한 후학들을 사랑했던 스님을 기려 강원을 향해 비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탑으로 이루어진 부도 1기는 지면에 사각의 기단을 놓고 그 위에 4사자를 배치하여 탑신부를 올렸는데, 상대석은 아래쪽에 앙련을 두르고 그 위쪽에는 난간을 둘러 매우 특이한 형태이다. 위쪽으로 3층의 몸돌과 삼층의 지붕돌을 올리고 상륜부는 지붕형태로 마감하였다. 탑비 부근의 승탑은 모두 몸돌이 둥근 종형이고 팔각의 지붕돌을 얹었다.

부도전을 지나면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이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는 차나무로도 유명하지만 차를 다루고 차를 마시는 생활도 풍부한 경험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암사에 처음 차를 보급한 스님은 통일신라시대의 도선 국사였다. 도선은  일주문 주변에 차나무를 심어 찻잎을 이용하여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선암사의 차가 보급하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 대각국사가 칠구선원을 신축하고 현재 재배하고 있는 칠전선원차밭에 심었고 여기에서 수확된 차를 법제하여 송나라에 수출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대각국사 이후 선암사에 자랐던 차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수면 속으로 가라앉았고, 정유재란으로 선암사는 거의 소실되면서 차나무도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가 복구가 시작되면서 기존의 차밭에도 다시 새로운 차나무가 심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 선암사의 상량문 등에 연화질에 ‘다각’이라는 소임이 등장하는데 이는 차밭과 차를 관리하는 소임자를 말하는 것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차를 즐겨 마셨음을 알 수 있다. 해방과 함께 불교의 분규로 차밭은 관리하지 않다가 70년대에 선암사 승려와 승주군청의 관심으로 차밭은 다시 되살아나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체험관을 지나 계곡의 옥구슬 구르는 듯한 맑은 물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걷다보면 검은 머리에 붉은 빛을 띤 목장승을 만난다. 선암사로 가는 길 좌우에 서로 마주보며 서 있는 호법선신장승은 위로 치켜 올라간 눈썹에 왕방울, 하얀 이빨과 곱술 모양의 수염이 3가닥이 뻗고 있고, 방생청계장승은 전체가 붉은 색을 띠고 눈썹은 없고 왕방울 눈과 코와 입을 구분할 수 없는 큰 코에 3가닥의 긴 수염이 아래로 내려와 있다. 이 두 장승은 조선조 말엽(병자년)에 이곳에 세웠던 옛 장승의 모습을 그대로 모조하여 1987년 9월에 다시 세운 장승이다. 호법선신은 불법을 수호하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마침내 성불하도록 도와주는 착한 신들을 뜻하며, 방생청계는 이곳부터는 더욱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매인 것들에게 자유를 베풀어야 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부터는 경내에 들어오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몸가짐에서부터 마음까지 불심으로 들어가라는 청결의 의미가 있다.

▲ 선암사 홍예교     © 정진해

목장승을 지나면 계곡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연결하는 무지개다리 2개가 놓여있다. 아래 다리는 무명의 무지개다리이고 위쪽의 다리는 승선교이다. 비 온 뒤에 개었을 때나 비가 오기 직접 태양을 등지고 섰을 때 목격 되었던 무지개처럼 휘어 있는 모양이라고 하여 무지개다리라고 한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으로 이루어졌지만 승선교는 돌의 몸을 맞추어 만든 다리이다. 우리는 이런 다리를 홍예교라고 한다. 유럽의 건축물의 초기 양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에 비유되는 말이다.

▲ 선암사 승선교     © 정진해

이 승선교는 조선 숙종 39년(1713)에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완성한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순조 25년(1825) 해봉 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선암사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을 때 이를 중건하기 위해 호암대사가 불철주야 일을 하고 기도를 하던 어느 날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 바라는 마음으로 백일기도를 하였으나 기도가 헛되어 관음보살이 헌신하지 않았다. 대사는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나 호암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준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지어 관음보살을 모셨다. 벼랑에 떨어져 죽으려 하다 한 여인이 구해준 그 자리에 호암대사는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놓아 관음보살이 거닐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 선암사 승선교     © 정진해

빈틈없이 각진 돌의 몸을 서로 의지하여 둥근모양의 무지개가 계곡의 물살을 비켜 자연에 합류하였다. 맑은 물은 투명하다 못해 속속들이 모두 바닥을 공개하였다. 나뭇가지 잎사귀는 수줍어 하늘을 가린 채 물소리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 홍예교 사이로 보이는 강선루는 홍예교의 반원 안에 자그마한 모습으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홍예위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자연석재들은 크고 작음을 적절히 활용하여 빈틈을 두지 않고 정교하게 짜 맞추었다.
이 다리를 보수하면서 사용이 불가능한 석재는 모두 별도로 모아 두었다.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습이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고, 홍예 한 복판에는 조각된 용머리가 계곡을 향해 사악한 무리들의 침입을 막는다.
기단부는 자연 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는 견고한 자연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리의 아랫부분부터는 길게 다듬은 돌을 연결하여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쌓았으며, 그 짜임새가 정교하여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을 보는 듯 한 느낌을 준다. 홍예를 중심으로 양쪽 시냇가와의 사이는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그 윗부분에도 돌을 쌓았는데, 모두 주변 계곡의 돌을 이용하였다.
다리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무지개 모양으로 건설한 양식은 가까운 보성 벌교 홍교(보물 제304호)와 같은데,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양식상 공통점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반원형의 승선교는 계곡에 물이 차 있는 날이면 물에 비치어 완전한 원형을 이루며 그 안에 강선루가 자리하고 있다.

▲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     © 정진해

현세와 선계를 구분하는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승선교를 놓았으니 옛 선인들의 자연에 귀속됨을 몸소 느끼며 실천해보려는 지대한 정신이 빗어낸 조형 의식과 심미안에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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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08 [09:24]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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