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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철학자가 되거나 애국자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 솔 시인
 
이 솔 기사입력  2017/03/02 [16:12]

사람이나 자연이나 척박한 환경에선 살아남지 못 한다 믿어왔다. 지구환경에서 사막은 건조하여 죽은 듯이 굳어 흐르는 물도 없고 잎을 피우고 열매 맺는 어떤 생명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생물들은 살아낸다.
건조한 사막에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흙탕물은 세차고 급한 물길을 트고 모래를 적시고 거센 물길로 대지를 적신다. 죽어있던, 죽은 척 하던 마른 땅이 살아나 숨을 몰아쉬며 함성으로 차오른다. 땅덩이는 살아있었다. 비 냄새는 갈증으로 헐떡이던 동물을 이끌어 내고 식물은 번개처럼 원상복구 하듯 풀과 나무들이 돌아오고 숨었던 생명들이 몰려온다.
빛도 없는 동굴에서 눈이 없어도 생명체는 살고 동토의 얼음 땅에서도 살아내는 위대한 생명. 아프리카 정글에서 먹이사슬의 순환은 엄숙하고 무궁한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사계절의 자연환경은 우리에게 다양한 생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자 좋아하는 계절이 있고 계절마다 그 다양한 의미를 사랑한다. 특히 시인들은 계절의 변화와 삶을 진지하게 노래한다. 독자는 시인이 그려낸 계절을 다시 음미하며 삶을 찬미하거나 인생의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 세월이 깊어가며 시인의 겨울은 조금씩 변해간다. 생명이 기지개 켜는 봄, 무성한 여름의 생명의 힘, 결실의 가을과 완숙미, 그 모든 경외감으로 감탄으로 자연에 빠져 지내왔다.
그러나 이제 겨울을 바라보는 시인은 점차 겸허해 지고 있다. 눈이 살짝 내린 겨울 산은 엄숙하다. 발가벗은 나무들이 줄지어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나무의 존재를 생각한다. 내 의식의 결정체는 얼음보다 차가운 품위를 지닌다. 아무 소리도 없는 설경은 깨달음의 선비다. 철학자이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눈 속에 줄 서 있다. 계곡 물소리도 숨었다. 사이에 산새 소리죽여 가지를 옮겨 앉는다. 이 길로 계속 찬 겨울 속으로 빠져가면, 강원도 인제의 20m나 되는 큰 키의 자작나무 숲으로 갈 수 있겠다. 자작나무숲을 보면 가슴 벅차 오르는 숨결을 느낀다. 

흰 수피가 눈 속에서 더 희고 찬 자작나무의 순백의 기상을 생각하면 두만강 건너 러시아의 연해주를 생각한다.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얼어붙은 러시아 땅에서 우리의 애국지사들의 활약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역사시간에 배운 독립투사들의 전진기지로 사학자, 언론인, 독립군, 음지에서 빼앗긴 나라를 위한 사투를 벌이던 선열들.
굽힘없이 죽죽 벋은 자작나무의 기개를 보며 서른 살의 안중근은 사격연습을 한다. 얼어붙은 나무숲이 떨었다. 1909년 10.26. 중국 하얼빈역,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코레아 우라!”를 외친 의병장의 외침이, 우리 역사가 겨울 소나무 숲을 울린다.
눈 덮힌 겨울엔  능선의 힘과 꿈틀거림이 눈이 시리다. 더 냉철히 사고하고 탁 트인 시야로 앞을 내다보아야 하겠다. 모두 내려놓은 나무들의 가벼운 마음으로 깊은 사유로 철학자로 살아도 되겠다. 나보다 우리를 위한 흐름으로. 흐름은 격랑도 폭포도 아닌 조용한 음성으로 타이르는 물결로 그 깊이를 더해야 하겠다.  얕은 시내에서 구르는 자갈의 부딪침이 아닌, 흙탕물이 계곡을 깎아내리는 물살이 아닌 넓고 깊어 유유한 물길로 흘러야 하겠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어느 외국인은 ‘법치를 뛰어 넘는 민심(public sentiment )'이라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 오래 살면서 경험해 온 외국인의 시각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
물론 각자의 견해가 있겠다. 우리 민족은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부지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두뇌가 비상하고 부모공경하고 은근과 끈기로 어려운 역사를 지켜왔다. 그 길에서 잘살아보자는 의욕으로 오늘을 이뤄내고 더하여 빛나는 경제성장은 여러 면의 도약적 발전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도 당당해졌다.

자연은 순서를 인위적으로 세우지 않는다. 봄 다음은 여름인 것이다. 여름이 덥다고 가을로 당길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해 사는 일이다. 옛 선비들은 재물이 없더라도 구차한 모습은 아니었으며 우리는 그들을 존경해 왔다. 더불어 경주 최 부자 네는 대를 이어 근경의 존경을 받는 자랑스러운 참 부자였다. 우리가 지닌 소중한 자산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부를 누리고 싶고 한을 풀고 싶은 속성은 어찌하랴만 과욕이 부른 비극이 오늘 우리 모두가 함께 진흙물에 빠진 형상이다. 잠시 자기의 꼼수를 모르는 주위가 우스워 보였겠지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어서 순박하게 속아오던 이들이 깨어나면 그 힘은 무엇으로도 막지 못할 것이다. 순진하게 의심 없이 믿어온 자기를 되돌아보며 일어나는 배신감은 변심한 애인보다 더 어쩌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을 알라고 하지만 사람은 어리석어서 한 번 어긋난 길을 되돌리지 못하는 것 같다. 손가락으로 콕 찍기만 해도 모두 드러나는, 비밀이 있을 수 없는 세상. ‘내 손 안에 있소이다’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올바른 길로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이없는 배신감에 좌절하고 그것이 분노로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 파괴는 분열로 증오로 밀려오고 있다. 한국인의 따뜻한 정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예부터 ‘의’를 존중하던 우리, ‘측은지심’으로 서로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그런 특집 드라마의 대미를 써내야 한다.  
서울 도심은 촛불과 태극기의 물결로 갈라지고 있다.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 이웃을 갈라놓고 세상에 부끄럽게 치달으면 그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던 일이겠는가. 한 번 되돌아보고 잘못은 깨끗이 반성하고 이 겨울 러시아 땅에서 나라를 다시 찾고자 목숨 걸었던 애국의 얼을 다시 새겨야겠다.

겨울눈으로 하얗게 눈부신 자작나무의 수피가 얼음 같은데 냉철한 정신이 큰 산울림이 되어 나보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 된 힘을 보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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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02 [16:12]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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