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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고려 시대 압록수는 現 요하다!”
강원대 남의현 교수, 중국 사료로 밝혀
 
민족NGO편집장 기사입력  2017/02/28 [10:36]

[한국NGO신문]박정학 기자=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지금 강단사학이 받들고 있는 ‘반도사관’은 북쪽 경계를 압록강으로 보고 그 이남에서 우리 역사가 전개된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평양도, 한사군도 한반도 북부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월 13일 오후 5시~6시 30간 KT광화문 빌딩에서 개최된 유라시안 네트워크 역사인문학 특강에서 강원대 사학과 남의현 교수(중국사)는 ‘고구려 시대의 압록강은 어디?’라는 주제로 고구려 시대로부터 고려 때까지의 압록수가 현재의 요하였다는 연구 발표를 하여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 강의 중인 남의현 교수

국정이든 검정이든 현재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서는 고구려 시대의 압록수를 현재의 압록강, 살수를 청천강, 평양성을 현재 북한의 평양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런데 남의현 교수는 중국의 많은 사서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고구려 때로부터 고려 시절 서희가 강동6주를 되찾을 때까지의 압록수는 현재의 요하, 살수는 혼하, 평양성은 중국 요녕성 요양이었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역사기록에 나타나는 강이나 하천의 위치가 현재 어디냐를 찾는 것인데, 국내에서 역사기록상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는 압록강의 위치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압록강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으면 우리 고대사를 바로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남 교수는 명나라 때의 역사인문지리서인 『대명일통지』의 기록과 이와 연결되는 『원사』 지리지의 내용을 먼저 소개했다.

① 당나라가 고구려 평양성을 함락하고 안동도호부를 두자 고구려는 동쪽으로 옮겨갔는데 압록수 동남쪽 천여 리로 갔다.
② 평양성은 압록강 동쪽에 있으며 왕검성이라고도 하는데 기자의 옛 나라이다. 한나라 때는 낙랑군의 치소였고, 장수왕이 처음으로 여기 거주하였으며, 후에 서경이락 불렀다. 원나라 때는 동녕로였다
③ [『원사』 지리지] 동녕로는 원래 고구려 평양성이며, 장안성이라고도 한다. 한 나라 때의 낙랑 땅이다. 장수왕이 처음으로 여기에 웅거하였는데, 당나라가 평양성을 빼앗자 동쪽으로 옮겨가 압록수의 동남 천여 리에 위치하였다. 그곳은 옛 평양이 아니다.

『원사』 지리지에는 명확하게 ‘현재의 평양은 옛 평양이 아니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안동도호부도 현 압록강 남쪽이 아니며, 왕검성도 낙랑군도 모두 현재의 평양이 아니라는 말이다.

▲ 고구려~고려 때의 압록수는 現요하라고 주장하는 남 교수의 지도

압록수의 위치를 찾은 추가적인 자료도 제시하였다. 먼저 압록수에 배가 다녔다는 기록이 많이 나오는데 현 압록강은 상류로 갈수록 급류가 형성되어 배가 다니지 못하고 뗏목을 주로 이용했다는 것이 현 압록강이 고대 사서에 나오는 압록수가 아니라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그리고 『통전』 『통감』 『수서』 『송사』 『요사』 『자치통감』 『성리대전』 『삼국유사』 등 명대 이전의 27가지 사료에 나오는 압록수(=요하)기록을 소개하면서 모든 기록에서 압록수는 현재의 요하를 지칭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이후의 평양과 살수 그리고 압록강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후 고려를 멸망시키고 소중화 조선을 개국하면서 우리 역사를 반도내로 재설정하면서 대륙에 있던 평양과 살수 그리고 압록강을 현재의 위치로 새긴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중요한 몇 가지만을 소개하자면, ▲(『삼국유사』 고구려본기) 고구려 때의 도읍은 안시성, 일병 안정홀(安丁忽)로서 요수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요수는 일명 압록으로 지금은 안민강이라고 한다. ▲(『성리대전』) 황하, 장강, 압록이 천하 삼대수이다. ▲(『자치통감』)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에서 흘러나오는데 빛깔이 물오리의 머리 색 같이 푸르기에 압록수라고 불렀으며, 평양성은 압록수의 동남쪽에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압록수를 혼동강이라 불렀다. 강폭이 300보로 평양의 서북 450리에 있다. ▲(신당서) 압록강 어구에서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를 타고 동북쪽으로 3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박작구에 이르는데, 발해의 경계가 된다. 다시 5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환도현성이 이르는데, 옛 고구려왕도이다.

이런 기록들을 종합하면 결코 고구려~고려 때의 압록수는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며, 살수도 청천강이 아니고, 평양도 지금의 평양이 아닌 요양이 된다. 그리고 초기 고구려 수도였던 환도산성도 압록강변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강의 후 박정학 박사는 “요하가 압록수라는 것을 수많은 근거자료를 찾은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요하가 천혜의 경계였을 수는 있지만, 낙양이나 서안에서 백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영정하, 난하, 대릉하 등의 수많은 강을 건너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군사작전상으로 볼 때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옛날의 요수나 압록수는 이보다 더 서쪽이었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복기대 교수는 『명일통지』는 명나라 초기의 국경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면서 사료의 세밀한 검토 결과를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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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28 [10:36]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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