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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파보다 더한 매국사학자 김현구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다』 저자
 
황순종 기사입력  2017/02/28 [10:18]

▲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다』 저자
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27) 오늘은 김현구가 ‘왜’가 아닌 ‘백제’가 임나(가야)를 지배한 것으로 무리하게 설정하는 의도를 파헤쳐본다. 일본의 식민사학이나 이 땅의 매국사학에서나 백제의 임나 지배를 주장하는 자는 김현구 밖에 없는데, 그의 의도가 외세의 지배를 부정하는 애국적 입장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주장의 진정한 핵심은 임나를 지배한 백제가 자주국이 아니라 왜의 속국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 식민사학자들도 주장하지 않는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는 노예적 주장, 즉 일본 극우파보다 더한 매국적 사관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대학 동문들은 물론 우리 국민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 김현구가 받드는 『일본서기』

일본 학자들도 하지 않는 억측으로 논리 전개


백제를 왜의 속국으로 보는 김현구의 관점 중 첫째는 『일본서기』의 긴메이(欽明) 천황이 백제의 성왕을 꾸짖는 내용이다.

“너[爾]는 누차 표를 올려 마땅히 임나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말은 그렇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하였다. 임나는 네 나라의 동량이다. 만일 동량이 부러지면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짐이 생각하는바 바로 여기에 있다. 너는 빨리 세우라.”

김현구는 『일본서기』에만 있는 이 기록을 믿고 백제의 대왕을 일왕의 신하로 간주한다. 비록 “야마토(왜) 정권은 임나에 대한 의사를 전부 백제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지만, 백제가 지배한 임나에 대해 일왕이 왈가왈부한다는 자체가 실제로는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애초부터 임나를 차지한 것이 백제라고 무리한 가정을 하니까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왕비’를 ‘부인’이라고 낮추어 부른다

김현구가 두 번째로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고 보여주는 사실은 백제 전지대왕ㆍ동성대왕ㆍ무령대왕의 왕후가 일본 왕실의 여인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8년 만에 귀국한 직지왕의 부인 이름이 팔수부인으로 씌어 있다. 고대 일본에서는 사람 이름에 ‘팔’이라는 글자가 흔히 들어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람 이름에 ‘팔’자를 사용하는 예가 거의 없다. 따라서 직지왕의 부인은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일본은 661년 백제 왕자 풍의 귀국에 즈음하여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한 예가 있다. 이런 면에서도 야마토 정권은 직지가 귀국하기에 앞서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동성왕이나 무령왕의 부인도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7쪽)

전지대왕(김현구는 『일본서기』에 따라 늘 직지왕이라 한다)ㆍ동성대왕ㆍ무령대왕의 부인(김현구는 왕후·왕비라고 하지 않는다)이 일본 여인일 것이라 추측하며, 왜에서 정책적으로 혼인시켜 돌려보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혼인이 백제 왕실과 무관하게 전적으로 왜 측의 의사에 달려 있다는 표현은 겉으로는 백제와 왜가 대등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독자들에게 ‘백제는 왜의 속국’이라는 자기주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을 일본인으로 만들면서까지

더 황당한 문제는 위 세 대왕들의 왕후가 일본인이라는 것이 김현구의 억측일 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위 문장에서도 ‘가능성이 높다’는 비학문적인 표현을 4번이나 반복했다. ‘가능성이 높다’고 한 번 말하면 25%씩 진실이 되어 네 번 말했으니 100% 확실한 진실이 된다고 믿은 것일까? 이런 치졸한 사람이 과연 학자의 범주에 들기는 하는 것인지 단순 무식한 주술사인지 필자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전지대왕의 왕후가 팔수부인이라는 이름이 『삼국사기』에 나오는데도 김현구는 그 출처를 굳이 밝히지 않고 ‘팔’자 하나만을 근거로 일본인으로 추정했다. 『삼국사기』 전지왕 조에는 김현구의 추정이 헛소리임을 증거하는 이런 내용이 있다.

“왕은 서제(庶弟) 여신, 그리고 해수 및 해구를 좌평으로 삼았는데 모두 왕의 친척이다.”

전지대왕이 세 명을 좌평으로 삼았는데 왕의 동생 여신은 왕성인 (부)여씨이며, 친척의 척(戚)은 왕후의 집안을 말하므로 해수ㆍ해구에서 보듯 왕후의 성 역시 해(解)씨로 백제인임을 알 수 있다. 왕후가 백제 8성 중 하나인 해씨임을 모르고 일본 여인으로 억측한 것이다. 만약 왕후가 일본인이었으면 『삼국사기』에서 밝히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또 동성대왕과 무령대왕이 왕자 시절 일본에 있었다는 것도 『일본서기』에만 있지 『삼국사기』에는 그런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전지대왕이 태자 때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일본서기』와 일치하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그러므로 『삼국사기』에 없는 동성대왕ㆍ무령대왕의 일본 체재 사실을 『일본서기』의 기록만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설사 『일본서기』의 기록대로 두 대왕의 일본 체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전지태자의 경우에서 보듯 두 대왕이 일본 여인과 혼인했을 가능성은 김현구의 표현대로 ‘높은’ 것이 아니라 ‘낮은’ 것으로 봄이 자연스럽다. 역대 백제왕들 중에 단 한명도 일본인 왕후를 둔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에마쓰 같은 악질 식민사학자도 이런 발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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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28 [10:18]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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