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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ㆍ투쟁ㆍ어울림의 원리와 현 시국
박정학 / 사)한배달 이사장
 
박정학 기사입력  2017/02/03 [10:15]

▲ (사)한배달 박정학 이사장
[민족NGO칼럼] 우리는 생존경쟁이라고 하여 생존을 ‘경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세계화를 추구하는 (신)자본주의에서는 ‘무한경쟁’을 강조하고, 공산주의자들은 가진 자의 횡포에 대해 못가진 자들이 물리적 투쟁을 통해서라도 생존을 ‘쟁취’해야 한다는 투쟁논리를 내세운다. 그 대표적인 대립의 현장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류 문화가 공멸로 가느냐 새로운 문화를 일구는 주도자가 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경쟁과 투쟁의 결과는 극단적 양극화!”
이러한 서구 물질문명이 잉태한 경쟁과 투쟁의 원리는 2세기 정도를 거치는 사이에 인류사회를 1%의 가진 자와 99%의 못 가진 자라는 극단적 양극화를 만들어놓고 그 해결법을 찾지 못해 ‘국가 파산’에 이은 ‘위대한 문명의 종말’이 오고 있다고 우려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세계에서 공산주의가 패배하고 자본주의의 승리를 보이는 듯 했지만, 완벽한 승리를 하지 못하고 복지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라는 변형된 체제의 사회가 되더니 결국은 공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다수의 석학들이 ‘세계화의 덫’이라면서 미리 경고를 했었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그 원흉이 ‘생존경쟁’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경쟁과 투쟁의 원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승리자인 자기들로서는 기득권을 포기하기 어렵다 보니 같은 원리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경쟁의 논리가 촉발한 현상이니 경쟁의 논리로서는 해법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현장에서 느끼는 불안감”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 사건-탄핵 정국에 이어지는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의 대립에서 그러한 대표적인 현상을 보는 듯하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많은 시민들은 권력자와 재벌, 언론, 검찰 등 가진 자들의 전횡에 대해 불만을 가진 자들로서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권익을 쟁취하려 하고, 태극기시위 참여자들은 그런 투쟁을 기획한 불순세력들로 인해 나라가 무너질 수 있음을 우려하여 수적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제 시위 참여자의 수적 경쟁에서 태극기가 승리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경쟁 논리에 따라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려고 하다보면 무리한 수단이 동원되고 사회적 혼란으로 발전되며, 그것을 기해 또 다른 불순세력들이 끼어들게 되면 함께 파멸로 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우주는 경쟁과 투쟁이 아닌 어울림의 원리로 유지!”
실제로 우주 자연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경쟁과 투쟁의 원리가 아닌 ‘어울림’의 원리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사슴과 사자, 상어와 명태가 먹고 먹히는 관계이지만 그것은 경쟁의 원리가 아니다. 경쟁이나 투쟁의 원리라면, 사자와 상어가 새끼를 많이 낳을 것이고, 그러면 사슴과 명태는 씨가 마를 것이며 결국에는 사자와 상어 자기들끼리 잡아먹는 상황이 되어 모두 파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어는 새끼를 적게 낳고 명태는 많이 낳아 적절히 잡아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전체 개체수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결코 멸종으로 가지 않는다. 자연(自然)이라는 말 그대로 원래부터 우주의 생존 원리는 스스로(自) 그렇게 되어 있는 것(然)이다. 만물의 생존은 경쟁이 아니라 어울림을 통해 유지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현대인들 중에서는 ‘생존이 경쟁’이라는 우리의 근본 지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구 물질과학 문명의 원리를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겨레에게는 먼 옛날 환국시대 때부터 지켜온 삶의 원리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앞선 사람들의 짧은 일본식 지식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잘못 해석함으로써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지혜를 묻어버리고 있지만, 현재의 난국도 이런 우리의 지혜로 풀어내면 인류사회 새 문명의 주도국이 될 수 있다.

“홍익인간 이념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자!”
지면 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홍익인간’이란 클 홍(弘), 더할 익(益), 사람 인(人), 사이 간(間)으로 ‘사람 사이를 크게 더하라’는 말이다. 너와 나의 사이를 경쟁이나 투쟁의 관계로 보는 서구의 논리와 달리 ‘우리’라는 더 큰 하나로 어우러져야 한다는 ‘어울림 원리’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라는 말은 모두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바탕으로 어우러진 더 큰 하나이니 그 속에서는 경쟁도 투쟁도 없어진다.

▲ 필자의 외침!

촛불시위의 투쟁 논리도 태극기시위의 경쟁논리로 서로가 이기려고만 한다면 이 난국의 해결이 아니라 사회혼란을 통한 공멸의 상황이 올 수 있다. 반면, 경쟁과 투쟁이라는 잘못된 원리가 아니라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어울림 원리’로 해법을 찾아 온 세계에 극단적 양극화의 모범적 해법을 보여준다면 우리나라의 현 난국은 새로운 인류문명의 주도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경쟁의 극(極)으로 몰고 가지 않고 함께 가는 ‘우리’의 지혜를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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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03 [10:15]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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