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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도움의 손길이 모여 임재윤 군의 기적을 바란다!
 
여영미 발행인 기사입력  2016/12/27 [11:37]

수학여행버스 사고로 5년 가까이 의식불명 임재윤군
병원비 등 생활고에 간병하던 어머니마저 건강 적신호
누군가의 도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 따뜻한 손길을


[한국NGO신문]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서남병원으로 2012년 우송중학교 수학여행 버스 교통사고로 아직 의식 불명 상태에 있는 임재윤 군을 만나러 갔다. 흐린 날씨 속 눈비가 어우러진 진눈깨비가 살짝 흩날렸다. 금방 멈추기는 했지만 잎이 다 떨어진 뾰족한 나뭇가지 너머 잿빛하늘은 애틋한 사람들의 사연을 꾹꾹 머금고 있는 듯 했다.

▲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임재윤군 옆에서 희망을 응원하는 선플재단 민병철 이사장, 우송중학교 선생님과 임재윤군의 어머니     © 김민정 기자

“우리아이도 수학여행 간 죄 밖에 없어요” 4년 반 동안 이 병원 저 병원 ‘병원 뜨내기 생활’을 하고 있는 임재윤군의 어머니(43세)는 2012년 5월 18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어머니는 그날에서 모든 것이 멈추었다.

2012년 5월 18일 대전의 우송중학교 수학여행단은 돌아오는 길에 버스전복사고가 났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임재윤군이 탄 수학여행버스는 양구 을지전망대 내리막길에서 추락,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버스에 탔던 학생들 중 20여명이 중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임재윤도 춘천 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경상을 입은 10여명과 중상을 입은 나머지 학생들은 거의 회복이 되어 현재는 정상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임재윤군만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머리를 크게 다쳐 중태에 빠졌고 현재까지 의식불명상태다. 담당의사는 당시 임재윤군의 생존 가능성은 1%라는 판정을 내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송중학교 학생들은 임재윤 학생의 회복을 기원하는 선플을 달고 병실에 찾아가 "재윤아 어서 일어나", "함께 학교가자" 등의 응원을 했다. 응원의 소리를 들은 재윤이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스스로 숨을 쉬며 눈을 깜빡이는 등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얼굴근육이라도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간병에 매달렸다. 그리고 현재까지 충남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동국대병원 일산병원 건대병원 서울의료원에 이어 서남병원까지 1~8개월마다 병원을 옮겨 다닌지 벌써 4년 반이다.

▲ 재활치료중인 임재윤군의 최근 모습     © 김민정 기자

그러다 보니 어머니도 이제 환자다. 빈혈과 하혈로 고생 끝에 2015년에는 자궁근종 수술을 하고 체격도 마른편인데 혈압은 예사로 180~190이다. 혈압 약을 먹으며 신경을 다스리고 있지만 병원비와 생활비 걱정이 틈틈이 머릿속을 짓누른다. 갑상선도 혹이 생겨 6개월 뒤 다시 검사해보자고 한다. 유방도 조직검사에서 혹이 발견되었다.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는데 이제 명치까지 아프다. 명치가 아픈 것은 스트레스성 위장병 때문이라고 옆에서 말해도 아픈 아이를 보면 내 아픈 것이 대수냐고 하면서 눈물만 훔친다.

기자가 물었다. 병원비는 사고보험료로 다 처리되지 않느냐고.
“사고 당시 병원에서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회복 되고 있어요. 처음에는 일체의 반응도 없었지만 이젠 표정도 생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아이유 이야기를 들려주면 미소도 지어요. 치료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버스사고로 인한 보험료만으로 될 수 없었고 비급여항목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임 군은 외동이다. 아버지는 따로 살고 있었고 이따금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생활비는 어머니가 외할머니가 하는 식당에서 알바를 하면서 보탰다. 하지만 임 군이 사고를 당한 후 외할머니도 몸져눕고 어머니는 임 군의 치료와 간병을 위해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은 문 닫을 수밖에 없었다.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아버지도 의욕을 잃은 탓인지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든 상황이다.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가 전화로 하소연을 하면 아버지는 “사고는 그 새끼들이 내고 내 자식이 이렇게 힘들고 병원비 때문에 또 이렇게 우리가 힘들어야 하느냐고” 울먹여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임 군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간병인을 쓰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체중이 65kg이 넘는 아들을 움직여 재활치료를 시키다보니 팔 다리는 물론 허리도 탈이 났다. 어머니와 함께 간병인 최 씨가 3년째 임 군을 맡고 있다. 최 씨도 체중이 65kg 넘는 임 군을 들고 이동시키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가서 주사를 맡고 허리치료를 받으면서 간병을 하고 있다.

사고 2년 후인 2014년 봄 세월호 수학여행단 사고가 터지자 어머니는 다시 한 번 통곡을 했다. 저 아이들도 수학여행 간 죄밖에 없고 내 아이도 수학여행 간 죄밖에 더 있냐고. 그들은 부모의 가슴에 묻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과 사망한 아이들이고 내 아들은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다를 뿐.

그 위안도 병원비와 생활비의 절벽에서 가슴이 타들어가고 숨이 가빠진다. 왜 잘못한 것 없는 우리가 사고당한 것만 해도 피눈물이 나는데 병원비까지 고민해야 하는지 이 모진 모순 앞에서 가슴을 친다.

하지만 고마운 사람도 있다. 우송중학교 선생님이 선플운동본부에 사연을 알려 선플운동본부에서 임재윤군을 도우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는 것. 임재윤군의 기적을 바라며 달린 선플 만 해도 수천 개가 넘는다. 그리고 기적을 바라면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작은 음악회도 열고 성금도 전달 받았다.  

아직도 선플운동본부에서는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소중한 생명을 살려낼 수 있었던 친구들의 따뜻한 메시지와 에너지처럼 임재윤 학생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는 선플을 달아달라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수학여행 버스전복사고로 중태에 빠진 우송중학교 임재윤 학생의 쾌유를 기원하는 선플을 달아주세요”라고.

기자가 찾아가자 어머니는 “아직 누군가 기억하고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채 희생당한 세월호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수학여행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임재윤군은 지금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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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2/27 [11:37]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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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윤군 힘내요!! 미니 16/12/28 [22:59]
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 하지만 꼭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어머니도 임재윤군도 힘내세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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