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 기고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일군사보호협정 체결하면 나라 망한다”
“역사를 잊은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 기억해야
 
박재국(수필가.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09/28 [07:47]

며칠 전 일본 관방장관이 한국에 대해 ‘한일군사보호협정’을 체결하자고 정식제의 했다. 즉각 거부해야할 한국은 이렇다 저렇다 답변 없이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하고 있다. 항간에 들리는 말로는 한국이 이미 반 수락을 한 상태라고 까지 말한다. 

3년 전 서울에서 양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회담할 때, ‘새날희망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 수백 명이 호텔 주변을 겹겹이 둘러싸고 제2의 을사 보호조약 체결을 결사반대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이었는데도 그렇게 결사반대 하였거늘 이제는 ‘군사보호협정’이니 사실상 제2의 을사보호조약인데도 왠지 조용하기만 하다. 그 당시도 한일 양국은 협정체결 날자 까지 받았다가 국민의 끈질긴 반대 여론에 굴복해 지금껏 보호협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내한하는 관방장관과의 회담 자체를 보이콧해야 한다. 우리는 그 이유를 지난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왜군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감언이설로 체결을 한 후 18년 후인 갑오년에 갑오 농민항쟁도 왜군을 동원해 제압 한 후, 1년 후인 을미년에 일본을 결사반대하는 국모 민 황후를 5백 명의 왜군을 동원하여 야밤에 궁궐로 침입해 시해해 시신을 잿가루로 만들어 뿌렸다. 당시 조선 정부에서는 항전은커녕 반대의 항의조차도 못하고 있음을 기화로 갖은 탄압을 다하다가 10년 후인 1905년인 을사년에 지금의 군사보호 협정과 같은 한일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기에 이르렀으며, 5년 후인 1910년 경술년에 조선이 망하기에 이른다. 

 구국지사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나라는 미래가 없다”라고 말씀 하셨다. 일본, 중국에 역사와 국토를 빼앗기고 있는 우리나라가 깊이 음미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어째서 독도가 일본 땅이란 말인가. 숙종 2년인 1678년의 역사책에서부터 일본지리부도와 역사책에도 조선 땅임이 여러 군데에서 기록되고 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면서부터 일본의 땅 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에도 고구려가 동이족으로 우리나라였으며 또 수도가 평양이니 당연히 우리나라 땅이다. 

  65년 한일 협정을 체결 할 당시 일본은 6개 재벌회사로부터 무려 6천6백만 달러를 갹출하여 한국에 지불했다고 년 전에 한겨레신문과 일요 스페셜이 보도했다. 당시 민주공화당 2년 예산을 능가 했다고 하니 놀랄만한 금액이다. 지금도 93 세로 건장하게 살아있는 김종필에게  죽기 전에 그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당시 5억 불 중, 2억은 차관형식이고 3억불이 무상인데 전재 보상금이 아니고 경제 협력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았으니 이 또한 처량한 노릇이다. 협정에서 평화선 철폐, 독도문제 회피, 징용징병 묵살, 원폭피해자와 정신대 보상회피, 문화재 반환포기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노예적인 자세로, 일본 측 뜻대로 서명을 했고 굴욕 외교를 했던 사실을 순진한 우리국민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지난 7월28일 한국과 일본은 정신대 보상이랍시고 ‘화해치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미 지난해 12월18일 한.일 간에는 위안부 보상을 합의하면서 소녀상을 철거하는 목적으로 10억 엔을 받기로 합의했었다. 그게 지난달에서야 송금 받았다. 일본은 이 돈을 생존하고 있는 42명의 위안부 할머니들과 학생들 장학금으로 쓰라고 명령까지 받았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간악한 일본인의 심성에 앞서 우리 국민들의 저자세가 문제이다. 커뮤니티는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완전히 비하 하는 발언을 했으며 ‘한국을 도와주는 이등박문에게 폭탄이나 던져 죽여서 좋은 일이 뭐가 있었나. 그 폭거가 독립운동이냐?’는 식의 댓글을 올렸으니 일본인도 이렇게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광복절 날 유명가수 인 티파니 멤버들이 가슴에 욱일승천기와 일본어를 크게 쓴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발광을 해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한심한 작태가 서울한복판에서 공공연히, 그것도 광복절 날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여름 필자는 경교장에서 ‘남북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68주년기념식’에 참석하면서 48년 4월 남북회의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거부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던 점을 떠올렸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총선거를 실시한다고 선포함으로써 김구, 김규식은 다시 북한행이 불가능해졌다. 그 후 남북은 68년째 서로 총칼을 겨눈 채 정전 협정을 종전평화협정으로 전환하지도 못하고 북은 5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남한은 한 번 더 도발하면 북한의 원수와 지휘부를 완전 파괴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매우 불안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이 현하 남과 북의 상황이다. 이제 대안은 단 하나다. 48년 4월 남북통일정부 수립 결의와 같이 지금도 남에서 먼저 북에 남북정당 사회단체 총회의를 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북은 즉시 응할 것이다. 미국이 극렬 반대 하지만 남북불가침 평화 협정을 체결하여 냉전을 피한 후에 자동으로 북의 핵을 점진 폐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지 의문이며 통탄스럽기만 하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6/09/28 [07:47]  최종편집: ⓒ wngo
저작권자(c)한국엔지오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