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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성장통이 아니에요
 
서동기(인권연대 간사) 기사입력  2019/07/25 [10:31]

  

  

 

위플래쉬(Whiplash)라는 영화가 있다. 채찍질이라는 뜻의 제목이다. 최고의 드럼 연주자를 꿈꾸는 음대 신입생 앤드류, 그리고 그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교수 플래쳐의 이야기다. 플래쳐는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의 폭언은 기본이고 자신에게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고 쫓아내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감상 가운데 한국 사람들에게서 유독 도드라지는 해석이 있다. 완벽한 연주를 위해 그 정도의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며 완벽한 연주, 천재적인 연주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아무리 납득하기 어려운 고통이더라도 마땅히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도를 넘은 플래쳐의 행위와 광기를 비판하면, 무엇을 위해서 노력은 해보고 투덜대는 것이냐며 비판한다.

 

며칠 전 대안학교에서 만났던 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자퇴 후 꽤 오래 방황을 했던 친구다. 마음을 다잡고 검정고시를 치렀고 대학에도 입학했다. 자기와 같은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며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한 달 전쯤 드디어 실습기관 면접에 합격해 현장으로 나가게 되어 긴장되고 설렌다며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더니 일주일 만에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컴퓨터 문서 작업 경험이 없는 그는 매일 실습일지 작성이 고통이었다. 문서에 표를 그리고 편집하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았는데 매일 쏟아지는 일지 작성과 다른 실습생들과의 비교 속에서 무기력했고 도망치듯 실습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바쁜 일과 속에서 한글 문서 편집 따위를 알려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나 조직은 없었다. 다만 다그치고 그것도 못하냐는 닦달뿐이었다. 사람이 귀하지 않은 세상이기에 을은 언제든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

 

위대한 연주를 만들어내기 위한 광기에 관한 영화와 사회복지사 실습현장에서 좌절을 겪었다는 평범한 이야기의 공통점은 성장을 뒷받침할 시스템의 부재다. 알아서 능력을 키우라는 다그침 앞에 을들은 끊임없이 자기를 착취하면서 불필요한 무기력과 고통을 겪는다. 갑은 답답하고 을은 지친다. 꿈을 갖고 무엇을 해보려던 을들은 밀려나거나 떠난다. 갑은 겨우 그 정도 성장통도 겪어내지 못하는 이들을 탓하며 능력을 갖춘 이가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악순환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계를 만나고 돌파해내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마땅히 어려운 것들에 부딪히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각자도생 식으로 개인들에게 책임이 미뤄졌을 때 비극은 시작된다. 적절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꿈꾸는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먼저 그 과정을 겪은 이들의 책임이다.


예술가나 스포츠 선수들을 길러내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보자. 최근에 나오는 그들 세계에서의 착취와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그들의 성취를 돕는다는 명목 하에 기존의 성취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눈감아져왔던 것들이다. 예술계나 스포츠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직장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뜻을 갖고 해보려는 많은 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주고 있는가. 더 나은 성취를 위해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성장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책임을 너무 쉽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본 글은 ‘인권연대’에 게재되었으며, 저자의 허락을 얻어 본지에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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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25 [10:31]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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