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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치기의 홍산문화 감상법
유적, 유물과 문헌사료를 넘어 유목사안으로 봐야
 
주채혁(周采赫)/IAMS 한국측 집행위원 기사입력  2018/11/30 [13:38]


필자는 문헌사학자들의 문헌사료 해석도 그렇지만 고고학자들이 고고유물을 해석하는 시각과 시력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음을 올해로 30년째 유목사 현지답사를 해오는 동안에 계속 느껴왔다. 도대체 왜 툰드라·타이가·스텝지대에서조차 토기·도자기와 청동기·철기가 농경사회사와 꼭 같이 역사발전을 재는 절대 잣대로 돼야 하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 주채혁 교수     


대체로 유목생산은 생업의 특성상 넓은 지역에 소수가 활동하는 ‘광역소수’(廣域少數)의 조직이므로 훈련된 기동력을 특질로 하고, 이에 대해 농업생산은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서 다수가 활동하는 ‘협역다수’(狹域多數)의 조직이므로 훈련된 정착의 힘을 특질로 한다. 그렇다면 기동력이 중요한 광역소수의 유목 생업 권에서는 토기나 도자기보다 목기나 가죽그릇 또는 골각기(骨角器)가 더 유용하고, 청동기나 철기 제품의 시장형성이 어렵게 됨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또한 바람이 센 개활지에서는 그것이 스텝이든 바다든 간에 돌문화가 발달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우며, 저습지대의 돌무덤에서는 뚜껑돌이 있는 고인돌 매장문화가 발달되고, 한랭 고원 건조지대에서는 뚜껑돌이 필요 없어서 바람만 막는 사판묘(四板墓)나 돌무지무덤이 발달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일반적 기준으로 문화권이나 어떤 집단의 활동영역을 간단히 가름하는 준거로 삼는 일은 경솔한 짓이 될 수 있다. 역사적 시간 속의 유목권과 농경권의 소통을 막고 거의 예외 없이 목·농 복합으로 이루어지는 동북아 유목제국의 개념마저 그르쳐 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 시베리아 유목지대(점으로 표시)와  필자가 추정하는 시베리아 순록유목민 추정이동로(이끼의 길. 녹색 화살표)     


상고시대 민족의 이동로는 ‘이끼의 길’  
필자는 일찍이 ‘소산(小山)인 선(鮮)에서 나는 선(蘚, Lichen)인 이끼’가 동토지대 툰드라나 겨울이 매우 긴 타이가지역의 순록의 겨울 주식인데, 이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한 번 뜯어먹으면 3~5년이 지나야 다시 자라므로 순록은 먹이를 찾아 새로운 선(鮮)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 순록치기들은 ‘유목방법’을 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끼이기 때문에 습기가 있는 응달에서 많이 나며 습기가 많을수록 잘 자라므로 순록치기들은 서시베리아에서 태평양이 있는 동시베리아 쪽으로, 남러시아 초원에서 대서양과 북극해 쪽으로 각각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한 갈래가 조선(朝鮮) 겨레다. 그래서 필자는 상당 부분이 몽골리안 루트와 일치할 것으로 보이는 그런 민족이동루트를 ?‘이끼의 길’-Lichen Road?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 중의 한 갈래로 뒷날 한국인 지배층 핵심 주류를 이루는 부족의 이동 루트를, 그간의 답사결과를 토대로 대체로 이렇게 추정해보았다.

바이칼 호 올콘섬 부르칸 바위에 그 시조전설을 갖고 있는 조선인(朝鮮人)-코리(持弓馴鹿)족은 그 후 바이칼과 훌룬부이르 지역 원주민들의 구비 사료에 따르면 대부분은 레나 강과 예니세이 강을 따라 북류해 대규모 순록유목을 경영하다가 레나 강을 타고 올라와 스타노보이산맥을 넘은 다음에 제야 강이나 부레야 강 등을 타고 내려오거나 직접 야블노비 산맥을 지나 헨티 아이막이나 도로노드 아이막, 그리고 마침내는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으로 진출하며 눈강(嫩江) 쪽으로도 발전해 가고 몽골스텝 쪽으로도 발전을 시도했다. 이들 순록유목민이 훗날 철기와 결합된 기마 양유목민이 되면서 본격적인 몽골스텝 진출을 시도하며 스키타이의 기마사술을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세계유목제국을 건설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퉁구스-에벵키 등 저습지대 예(濊)계열 종족이고, 후자는 흉노나 고리(槁離) 등의 고원지대 맥(貊)계열 종족이었던 듯하다. 지금도 광활한 훌룬부이르 몽골스텝∼눈강 평원(=呼嫩鮮原) 원주민들은 이런 갈래가 바로 이 지역에서 서남과 동남으로 갈려나갔다는 구비전승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를 명확히 말해주고 있다(『송년특집 다큐멘터리 유목민의 땅 몽골을 가다』제1∼2부, SBS TV 홍성주 제작자 취재 보도, 1992). 그러니까 동북아시아 순록유목민들의 남하 루트는 대흥안령을 타고 요서 고원지대로 남하한 부류와 제야강과 눈강(嫩江)을 타고 소흥안령 산록 아성(山麓 阿城) 지대로 남하한 2대 부류가 있었던 것으로 잠정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후자는 순록유목의 본질을 더 원초적으로 유지하고, 전자는 철기와 결합해 기마 양유목민으로 발전하면서 아주 강력한 기마 양유목 제국 창업의 주체로 자기혁신을 거듭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로 동북아 유목제국은 애초에 바이칼-북극해 권에서 잉태되고 홍산(紅山)과 할빈시 아성(阿城) 일대에서 태어나 각각 제 나름으로 기틀을 마련한 후에,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에서 본격적으로 확대 재생산 되어 홍산 문화와 아성문화(?)가 결합되어 발전하다가 칸발릭-대도 연경(大都 燕京), 곧 베이징에서 결실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차탕 조선을 상징하는 홍태양(불함)의 삼족오     


홍산문화는 순록유목태반의 치우 세력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조선-고구려의 ‘순록유목태반’ 기원을 가름한 것으로 보이는 홍산 문화다. 돌문화권의 일정한 한계선이라 할 서북부 홍산 문화권에서 1990년 초중반에 손보기 단장[필자도 부단장으로 동참]을 필두로 장덕진 대륙연구소 회장의 10개년 장기 기획 연구비지원에 힘입은 고올리 돌 각담 무덤 발굴을 감행하며 많은 담론들을 주고 받아본 적이 있다[한몽학술조사연구협회/몽골과학아카데미.『한몽공동학술연구』1~4집, 1992~1995, 그 결과의 일부로 출간됨]. 무엇보다도 홍산 문화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가 몽골스텝을 기지로 목?농을 아우르는 성격을 보유하는 유목제국의 소산이라면, 물론 흔히 하가점 상층문화와 관계된다고 보는 청동기∼철기시대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Scythian의 기마 양유목이 결코 아니고, 필연적으로 석기시대 이후에 바이칼 호 북극해 권을 토대로 주로 이루어진 순록유목일 수밖에는 없다. 현지 중국학자들이 홍산 문화권의 치우(蚩尤) 세력이 연산(燕山)산맥에서 중원에 진격하는 과정에서 탁록(??鹿)대전이 이루어졌다는 가설을 제기해보는 사실은 각별히 주목해봐야 할 시각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에, 홍산 문화의 주체라 할 치우(蚩尤)의 세력은 저습지대를 무대로 하는 숫 수달(雄水獺) 예(濊)계 순록치기와 고원지대를 무대로 하는 산달(山獺:너구리) 맥(貊)계 순록치기의 결합체 또는 선족(鮮族)과 조족(朝族)의 통합체로 목·농을 아우르는 순록유목 제국을 세웠을 뿐 하모도(河姆度)문화나 앙소(仰韶)문화의 주체인 이른바 한족(漢族) 또는 준 한족 세력과는 무관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야쿠츠크 국립대 사학과의 알렉셰프 아나톨리 교수의 구두보고[「한민족의 기원과 고대국가 형성과정의 퉁구스-만주 요소 문제」『한민족 유목태반사 연구 복원을 위한 구상』강원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토론 석상애서 언급, 2007.4]에 의하면 수달과 산달이 순록유목 본거지인 사하지역 북극해 권에는 없다고 하니 예(濊), 맥(貊), 예맥국(濊貊國) 문제는 훌룬부이르 태평양권-대만주권이 주 무대가 되어 이어져왔거나 발생하고 발전해왔었을 수 있다.
 
▲ 필자의 저서들    


그런데 이 요서지역이 고원 건조지대라 요동지대와도 다르게 풀이 억세고 거친 몽골양초(蒙古羊草)의 몽골스텝이요, 그간의 생태계의 변화를 고려해 어느 시기에는  나무가 자랐다는 것을 상정해보더라도 역시 고원지대라 요동지대와 같은 숲이 아닌 타이가였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이라는 중국 최고의 신석기 집단 주거지 흥륭와(興隆?) 유적이나 ‘중화제일룡(中華第一龍)’이 발굴된 사해(査海) 유적이 모두 몽골스텝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이 지역 원주민 출신인 필자의 제자 에르덴 바아타르 내몽골 대 몽골사학과 교수가 확인해 주었다.

실은 강희(康熙, 1662∼1722) 연간에 이 지역 내지 한족농민의 입경(入境) 농경이 허용되기 이전까지 이곳은 유사시대 이후에도 북방유목몽골로이드만 살던 땅이었다. 그렇다면 한족(漢族)의 시원도 한(漢)문화의 상징인 용의 시원도 모두 북방유목몽골로이드와 그 문화에 있다는 말인가? 이른바 「동북공정」은 어이없게도 중국 인민의 자국사 인식판에서 이런 자가당착(自家撞着)의 ‘끝없는 수렁’(無底坑)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의 역사 제국주의적 몽골-만주 역사 침략이 북방유목몽골로이드의 장구한 거대 역사에 동화되는 결과를 자초해가고 있는 셈이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꼴이랄까? 사실(史實)이 아닌 허구적 이른바 공·주자(孔·朱子) 이래의 대한족사관(大漢族史觀)의 사필귀정 열매가 막 탐스럽게 영글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쯤 해서 우리도 남의 장단에 춤추는 어이없는 광대 판을 그만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 사하지역 탐사하는 필자     

 
정착 농경사안(農耕史眼)으로 유적과 유물을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필자는 바이칼 호 북극해권의 순록유목 부족 문화권과 삼림툰드라라 할 타이가지역 순록유목민의 생태-생업지의 어느 한 시기에 수분 친연적(水分 親緣的)인 거대한 낙엽송 숲이었던 목?농을 아우르는 홍산의 순록유목 제국 문화권, 그리고 첨단 순록유목 문화가 철기와 어우러지면서 이룩한 훌룬부이르 몽골스텝 Scythian의 기마 양유목 제국 문화권으로 유목문화권을 시대별∼지역별로 좀 더 구체적으로 우선 크게 나눠보려 한다.
고비 일대에서 낙엽송 석탄과 화석이 대거 출토되고 있으며, 베이징 원인 두개골 화석 첫 발견으로 유명한 페이원중(裵文中)은 대흥안령북부 몽골스텝 잘라이노르에서 동토(凍土)작용을 처음 찾아내어 그간 지하에 광범한 동토현상이 있어왔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여기서 이런 정보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를 통해 정착 농경사안(農耕史眼)으로 유적과 유물을 일색화하는 해석의 어리석음을 경계케 하기 위해서다. 생명 공학적 접근까지 가지 않더라도 Chaatang Choson 태반인 조선-고(구)려라는 종족 또는 나라 이름이 이미 한민족 스키토·시베리안 순록유목태반 기원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처럼 조선과 고구려-몽골 국명이 그러하듯이 이들은 순록치기가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의 Scythian 기마 양치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순록유목제국의 절정을 이뤘던 것으로 보이는 홍산 문화권에서 그 기틀을 이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유목민 상징 동물들     


홍산 문화는 유물과 문자를 넘어 유목사안(遊牧史眼)으로 읽어야!
생각건대, 12∼3세기 칸발릭(大都-燕京) 유적지를 먼 뒷날에 발굴하고, 거기서 출토된 유물과 문헌사료의 양과 질에 현혹돼서 이것이 농경제국의 유적이라고 사료해석을 해낸다면 한편의 희극이 될 것이다. 몽골-원 제국은, 유물도 문자기록도 아주 적게만 남기는 특성을 가진 유목 무력이 주도해 목·농을 아우르며 창업해낸 엄연한 유목제국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목?농을 아우르는 유목제국의 수도는 스텝과 농경지의 접점에 두되 접점 스텝의 요지에 두는 것이 보통이다. 북경도 아성(阿城)도 셀죽투르크 제국의 수도 페르시아고원의 바그다드도 그러하고 분명히 몽골스텝에 엄연히 자리 잡고 있는 적봉(赤峰, Улан хаад)의 홍산(紅山) 또한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홍산 문화를 읽는 독법은 유물과 문자를 넘어 유목사안(遊牧史眼)으로 그 유물과 문자를 들여다봐야 한다. 홍산문화는 정착농경문화인 앙소 문화나 하모도 문화 등의 중원문화와 크게 차별화되는 기마 양유목의 모태인 순록유목태반의 조선-고구려에서 배태되었기 때문이다.
 
▲ 순록치기 모습     


순록치기 조선으로부터 유목 태반의 DNA를 부활시켜야!
따라서 필자는 비(非)유목지대 백두산(白頭山 ‘흰머리산’-만년설악) 영봉(靈峰)의 코리안 유목적 디아스포라 한겨레 문화에서 유목적 DNA를 부활시켜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냥감도 습도와 먹이사슬 등의 생태조건을 따라 시베리아 고원과 백두대간이 소통돼 오고 백두대간 조선족(Choson tribe)과 스키토·시베리안인 Chaatang(순록치기) 조족(朝族)과 선족(鮮族) 또한 ‘조선족(朝鮮族)’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홍산 문화의 주도적 실체는 중원 한족과의 소통이 아니라 생태생업권으로 봐서 주로 유목 태반과 그렇게 소통되어 왔고 그런 유전체를 가진 조선인이기에 앞으로도 그런 DNA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중국의 역사제국주의 위협 하에 공통으로 놓여 있는 러시아와 한국이 공동으로 대처할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시베리아의 최대 타이가인 동·서사얀(鮮: Sayan) 산을 태반으로 하는 소얀(Soyan: 鮮)족은 조선의 선(鮮)족과 역사적인 맥이 이어지고 아메리카 인디오와 유전체 비교 검토의 결과 그 기원지가 오늘날의 러시아인 사얀 산을 태반으로 한 이들임이 공인되고 있으므로 역사적으로는 미국과도 어느 정도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본다.
오르도스 기원설과 홍산 기원설-시원단계 황태양 기원설과 황태양 문화와 직접 교류하면서 무르익은 홍태양 기원설, 그리고 탁록대전의 역사적 본질 천착!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 앞서 홍산의 홍류[紅柳-『길림성야생경제식물지』(1961년)엔 朝鮮柳 별칭: Burqan-不咸]와 오환선비의 오환(烏桓)이 정겸(丁謙)의 지론대로 붉음(Ulan Bator의 ‘Улан-桓’)임을 직시하고 ‘붉은 악마’를 부활시키는 Chaatang Choson 삼족오(三足烏)누리가 먼저 열려야 한겨레 참역사의 숨통이 제대로 트일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바이칼 호 올콘섬 부르칸 홍태양 하느님 누리에서 붉은 삼족오(赤鴉; 『?夷中 詩歌』)가 유목의 철기 수용과 함께 이룩된 스키타이 기마 양유목혁명 이래로 가죽의 검붉은 세발까마귀에서 청동~황금빛 태양새 신비의 삼족오 금오(金烏)로 떠오르고 있었으리라 즐겁게 추정해보는 환희도 일품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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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30 [13:38]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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