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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남기고 떠난 자리 ‘천등산 봉정사의 문화재’2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11/23 [11:26]


문화재 :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외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태장리)


무량해회 맞은편에는 화엄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대웅전 마당과 극락전마당을 갈라놓은 듯하다. 화엄강당이 언제 창건 된 것인지에 대한 자료는 현재 없는 실정이나 극락전 상량문의 중수 내용과 대웅전 상량 도리에서 발견된 묵서명 등에서 중수가 있을 때 스님들의 강학공간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며, 건물전체의 세부수법 등으로 볼 때 극락전과 대웅전의 중수가 있었던 17세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화엄강당     


1930년대 등도해치랑(藤島亥治郞)이 <동양미술(東洋美術)>에 발표한 <천등산봉정사>의 자료에 의하면, 지금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에서 보아 북측 2칸이 온돌방이고 남측 1칸이 부엌이다. 그러나 이 자료에는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현재의 온돌방에는 변형이 없으나 온돌방 뒤쪽으로 4칸(2칸×2칸)의 마루가 깔려있고 그 남측공간은 전부 부엌이 되어 지금보다 부엌은 매우 넓고 서쪽에서 비스듬하게 부엌으로 출입하는 2짝의 문이 달려있다. 이 부엌의 가운데 기둥은 현재 건물 남측면 각주(角柱)위치가 되고 이 기둥선을 따라 서측으로 우화루(雨花樓) 누각에 달린 7칸 회랑이 있어 화엄강당과 이 우화루 건물이 연결되고 서쪽회랑 끝의 2번째 칸 기둥에 맞추어 현재의 고금당과 연결되게 2짝문을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가 언제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대웅전은 맞배지붕의 주심포계 건물로, 기단은 장대석 외벌대쌓기로 얕으며 남쪽에만 자연 지세를 따라 자연석 4~5단을 쌓기 위해 장대석을 돌렸다. 앞면 3칸, 측면 2칸으로, 가구는 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주심포계 양식이나 첨자를 끼운 익공계로 변해가는 절충식 양식을 취했다. 아래 기둥의 윗몸에 헛첨차를 짜서 기둥머리 위에서 나온 1출목의 첨차를 받치게 하였는데, 이 첨차가 외목도리를 바치고, 외목도리가 지붕 서까래를 차례대로 받치도록 짰다.

건물 앞면의 왼쪽 1칸은 빗살무늬의 교살창을 단 부엌이고, 나머지 2칸은 방으로 3곳에 띠 모양의 살과 함께 청판을 둔 4분합문을 칸 마다 달았다. 건물의 옆면 가운데에 네모난 기둥을 두어 대들보를 받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대들보 위에는 짧은 동자기둥을 얹고서 마루보를 놓은 다음 덩굴무늬를 새긴 대공으로 마루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대들보와 마루보 사이에는 작은 살창이 있어 특이하다. 건물 기둥의 간격이 넓은 반면 기둥은 굵고 짧으며, 공포 부재도 높고 굵은 편이다. 차분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건물이다.
 
▲ 극락전 옛모습     


대웅전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 현존 국내 최고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관심의 대상인 극락전은 원래 모습과 현재 모습이 다른 점에서도 관심의 대상물로 보고 있다. 1972년에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1625년(인조 3)의 상량문에 1363년(공민왕 12년)에 건물의 지붕을 중수한 기록이 있어 적어도 고려 중기인 12~13세기에 세워진 목조건물로 통일신라 이후 고려까지 건축 기술이 계승된 이른바 고식인 배흘림 양식과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즉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이 안쪽으로 굽어 있는 점, 대들보 위에 산 모양에 가까운 복화반대공을 배열하였고, 첨차 끝에 쇠서를 두지 않은 점 등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양식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계 맞배지붕건물이며, 가구는 기둥 윗몸에 창방을 두고 주두를 놓은 후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렸다. 첨차는 쓰지 않고 출목의 첨차로 외목도리를 받쳐 지붕 전체를 받치게 하였다. 정면 창방 위에는 복화반대공을 칸마다 얹어서 뜬장여를 받쳤고 정면 가운데 칸에 판장문을 달고 양 옆 칸에 광창을 냈다. 그 외의 3면에 모두 벽으로 막아 감실형 건물을 형성하였다.
 
▲ 극락전     


기둥 위의 공포 가운데 도리 방향으로 놓인 첨차로 위 뜬장여를 받치고 그 위에 놓은 첨차로 주심도리와 외목도리를 받쳤다. 측면의 가구는 귀기둥에 평주로, 그 안쪽의 두 기둥을 약간 높은 고주로 하고, 가운데 고주는 마루도리까지 높였다. 기둥머리에는 3겹으로 포갠 첨차와 장여, 주심도리가 튀어나온 채 측면을 구성하고, 종중도리와 및 외목도리와 더불어 9량가를 이루고 있다. 특히 마루도리와 주심도리를 잇는 八자형 솟을 합장을 둔 것이 특이하다.
내부의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뒤쪽에만 2개의 고주를 세웠다. 그 사이에 불단을 조성하고 불상과 불화를 봉안하였다. 주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윗몸을 짜 맞춘 뒤 다포식 구성을 지닌 지붕을 씌워 닫집을 마련하였다. 대들보 위에 2개의 복화반대공을 놓아 덧보를 받치고 이 위에 종보를 놓았다. 종보 위에는 다시 대들보 위 복화반대공과 비슷한 모양의 대공을 올려 종도리를 받았다. 종도리 양 옆에는 솟을 합장을 두어 측면으로 힘을 전달하도록 처리하였다.
 
▲ 극락전 측면     


극락전은 복원전의 모습과 복원 후 지금의 모습은 다르다. 정면의 띠살 창호와 전면 툇마루, 내부 우물마루, 동서쪽 측면의 창호와 비바람을 막는 풍판, 단청을 지적할 수 있다. 많은 기간이 지나면서 문제점으로 지적해 나갔지만, 지금까지도 그 어떤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1960년 이전과 1970년대 이후의 모습을 놓고 찬반이 오갈 것이다.
 
▲ 삼층석탑     


극락전 앞에는 3층 석탑 한 기가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불탑은 대웅전 앞에 세우는데 이 석탑은 극락전 앞에 세웠다. 지대석은 5장의 장대석을 깔고 그 위에 4매의 판석으로 하층기단을 조성하였다. 기단의 4모서리에는 우주를 모각하였고 4면에는 2개의 탱주를 모각하여 3면으로 나누고 안쪽에 측연화문을 1구씩 새겼다. 그 위에 덮은 갑석의 상부는 약간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상층기단의 각 모서리에는 우주를 모각하고 각 면의 중앙에는 1개의 탱주를 모각하였다. 상층기단의 갑석도 하층기단 갑석과 같이 약간 경사지게 처리하였으며, 상면에 각호각형의 3단 받침을 마련하여 초층 탑신을 받치고 있다. 1~3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으며, 몸돌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었는데, 초층 몸돌 앞면에는 돋을 새김된 문비형을 새겼다. 지붕돌의 아래에는 1층 3단, 2층과 3층은 4단의 받침이 낮게 조출되었다.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길이가 짧아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에 이르러 반전되었다. 지붕돌의 상면에는 각형 2단의 몸돌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정상에는 철제 찰주와 함께 노반·복발·앙화·보주로 구성된 상륜부를 이루고 있다.
 
▲ 삼층석탑     


전체적으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고, 각 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률이 적다. 지붕돌 역시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 고금당     


극락전 우측에는 고금당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1969년 해체 복원공사 당시 발견된 기록에 1616년(광해군 8)에 고쳐 지은 것을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다.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주었는데 이전 모습을 지닌 것은 방 앞쪽 쪽마루와 칸마다 달려있는 외짝문이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앞면 3칸에 2짝 여닫이문을 달았고,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았다. 남쪽은 지붕을 연장하여 칸을 막아서 부엌을 달았다. 방 앞에는 쪽마루를 깔고 벽간마다 띠살문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짜인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은 작지만 다양한 건축 기법을 사용하여 짜인 건축물로 주목받고 있는 문화재이다.
 
▲ 영산암     


봉정사는 2개의 암자가 있다. 영산암과 지조암이다. 영산암 건물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 등의 사료로 보아 19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산암은 계곡을 메우고 자연석으로 쌓은 돌계단이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암자로 가는 길은 덜 생소하게 느껴진다. 돌층계를 오르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왼쪽으로 중층의 우화루가 있다. 우화루 아래를 통하여 영산암에 들어서면 땅의 높낮이를 이용해 3단으로 구획한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사방이 건물을 둘러싸고 그 가운데의 마당도 단조로움을 피해 각기의 자리에 맞게 맞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마당에 석등이 있고 돌층계를 올라 상단의 삼성각에 오르면 작은 공간에 이처럼 깊은 곳이 있음에 놀라게 된다. 또 다른 특징은 삼성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에 마루를 별도로 냈고, 송암당만 툇마루를 두었고, 응진전, 영화실, 우화루, 관심당은 쪽마루가 설치돼 있다. 전체적으로 'ㅁ'자 형으로 매우 폐쇄적인 형태로 보이지만. 우화루와 송암당에 누마루를 두어 개방성이 도드라져 답답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도리어 아늑함을 준다. 게다가 높낮이가 3단으로 되어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눈길마저 시원하다.
상단에 주불전인 응진전을 중심으로 제일 안쪽에 삼성각, 영화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앞으로 동산을 만들었다. 중간마당에는 송암당과 관심당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하단에는 우화루가 놓여 있는 구조다.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여 암자의 분위기를 자연에 동화되도록 한 이곳의 공간 처리 수법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엿볼 수 있다.

2018년 6월 30일에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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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3 [11:26]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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