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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시마을]이솔,수양버들은 권태를 모른다
 
이솔 기사입력  2018/05/04 [10:08]


 

 


수양버들은 권태를 모른다
                 이 솔 (1941~ )


양수리에서 경춘선 철길을 건너
주욱 벋은 길을 따라 넘치는 강물이
긴 스란치마를 끌며 나릇나릇하다
파문이 고운 주름을 잡는다
안개가 치마를 훌훌 털며 올라가면
너그러운 마음보다 더 넓은 강폭에
산이 잠긴다
계곡이 잠긴다
긴 수양버들이 어깨를 내려뜨리고
흐느적거리는 권태를 스란치마폭에 던진다
햇빛이 탱탱하게 불어나는 오후
수상보트가 스란치마를 찢고 달아난다
흐느적거리는 권태가 찢겨나간다
금속성에 감전된 강물
햇빛이 하얗게 타고
산그림자를 가르고
그 푸른 속살을 내보인다

 
 
이오장 시인의 시 해설/유유자적(悠悠自適)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속세를 떠나 속박 없이 마음 가는대로 자유롭게 누리며 산다는 것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바라는 삶이다. 그러나 사람은 원래가 자기의 뜻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지고무상한 섭리로 태어난 존재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다면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유유자적한 삶은 원래 자연이 사람에게 준 것이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외롭다. 괴롭다. 죽고 싶다. 라고 푸념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태어나 지식을 쌓아가면서 자연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연을 잊는다는 것은 유유자적을 버리고 어딘가에 얽매어 끌려다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괴롭고 외롭고 죽고 싶다고 한다. 현대를 산다는 것은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는 불가하다. 하다못해 가족에게라도 얽매여 살고 가족이 없어도 친구. 동료. 이웃 등 어딘가에는 묶여 산다. 그것은 남과 나를 비교하여 서로의 거울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를 비춰볼 거울이 없다는 것은 생활방식을 잊는다는 것으로 인식하여 그때부터 삶의 권태를 느낀다. 이것은 누구나 똑같고 이긴다면 활력을, 진다면 무기력을 부여받는다. 이솔 시인은 수양버들의 늘어진 가지에서 사람이 가진 무의식의 권태를 본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삶의 권태를 비춰본다. 흥미를 잃고 게을러진다는 것은 육체적인 피로감보다 마음에서 일어난 의문과의 충돌에서 온다하여 이것을 이기고 활력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느 날 나들이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양버들의 춤사위를 보고 나는 누구인가를 본 것이 아니라. 왜 모든 것에 실증을 느끼는가를 떠올리고 수양버들이 되어 잠시라도 권태를 잊고 산이 잠기고 계곡이 잠기는 강 속에 나를 버린다. 새로운 활력을 찾아 원형의 자연 속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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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04 [10:08]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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