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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떠나는 순수여행지 ’산간오지의 너와집과 코클·화티'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04/27 [09:50]


문화재 : 신리 너와집 국가민속문화재 제33호.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문의재로 1223-9, 1423-66

 
태백시 통리에서 427번 도로를 따라 해안방향으로 가다 보면 아홉선비골을 지나고 얼마큼 갔을까 신리마을에 닫는다. 민박을 할 수 있는 너와 펜션과 식당을 갖춘 관광 마을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삼거리를 만나면서 좌측으로 문의재로가 시작되고 도로변과 인접한 가옥 10여 채가 자리하고 들어서면 10여 채의 가옥이 있고, 개천 옆에는 통방아가 자리하고 있다. 계속 문의재 방향으로 좌측으로 너와집 한 채가 있고 더 오르면 또 다른 너와집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신리라는 마을은 마을과 구사리 사이에 있는 ‘큰·작은 소붓재(大ㆍ小牛觸峙)’가 있어서 ‘소붓치’라 부르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부쇳골(火鐵洞)’으로 부르게 되었었다. 이곳에 자주 불이 나면서 이곳을 신리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에는 반정(半亭; 반징이), 음지(陰地), 문의(文義; 무넹이), 양지(陽地), 소항(小項; 所項:빼모기)의 5개 자연부락이 있어 이를 모두 합쳐 신리라고 부른다. 마을 북쪽에는 육백산이 준순하여 동산항(東山項)이 솟아 있고 남에는 호암산(虎岩山)이 높이 솟아 있으며, 오만곡(梧滿谷; 오망잇골)에서 발원하는 계류와 구사리에서 흐르는 계류가 본리에서 합류하여 가곡면 동활리를 지나 가곡천(柯谷川)에서 합류한다.
 
▲ 김봉문 너와집 전경     


너와집은 강원도 산간오지 마을의 화전민들이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화전을 통한 농사를 주업으로 하다 보니 산불이 자주 날수밖에 없었다. 마을 지명도 신리라고 할 만큼 화재에 노출된 마을이 지금은 매우 보기 힘든 가옥 3채가 남아 있으며, 마을 사람들도 수수한 정과 마을의 인심만큼이나 따스함을 그대로 간직한 미덕의 마을로 남아 있다.

너와 마을은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오지마을로 오염되지 않는 물과 공기, 순박한 사람들, 산을 개간하여 만든 밭에 무럭무럭 자라는 작물이 여무는 풍경에 고향의 정이 듬뿍 느껴지는 곳이다.
너와집 3개 동과 이들 집에 딸린 통방아, 채독, 김칫독, 화티, 설피, 창, 코클, 주루막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너와집은 옛적에 화전민에 의해 지어진 집들로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가옥이다. 지붕은 너와, 새, 굴피 따위의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조명과 불씨의 보존을 위해 별도의 시설인 화타를 설치하였다. 건물의 평면구조는 함경도 지방의 건축 양식인 겹집 양식을 따랐으며 건축기법도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너와를 이용하여 지붕을 이를 때는 너와만 사용된 것이 아니고 바람에도 날지 않도록 돌을 올려놓는다. 너와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폭도 일정하지 않다. 보통 가로 20~30cm이고 두께는 5cm가량 된다. 너와는 ‘느에’ 또는 ‘능에’라고 하는데, 토종 소나무를 길이 60~70cm로 잘라서 이것을 도끼로 쪼갠 작은 널빤지를 이른다. 쪼갠 너와 70장을 한 동이라 하고, 한 칸 넓이의 지붕에는 보통 한 동 반에서 두 동이 사용된다.
 
▲ 김봉문 너와집 너와지붕     


일정하게 쪼갠 너와는 추녀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서 반 이상의 길이가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덮는다. 용마루에 이르러서야 앞뒤의 지붕이 맞물리면 그 위에 용마루를 덮으면 지붕 잊기가 끝이 난다. 2~3년이면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부분은 밖으로 하고 밖의 것이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거나 뒤집는 방법도 취한다. 바람에 너와장이 날아가지 않도록 돌이나 통나무로 지그시 눌러놓기도 하였다. 대부분 너와의 수명은 약 10~20년 정도이다.
평면구조의 너와집은 폐쇄구조로 사각 공간의 활용 면에서 매우 우수한 구조를 가졌다. 방, 부엌, 외양간이 모여 있다. 이것은 화전지역이어서 산짐승으로부터 가축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이고 긴 겨울에도 보온을 극대화할 방안이기도 하다.
 
▲ 김봉문 너와집 입구     ©


문의재로 1423-66 소재 너와집을 찾았다. 마을길을 따라 둘린 담장은 바위 이끼가 끼어 고풍스러우면서 산촌의 멋을 가득 담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방앗간 옆으로 들어서면 담장에 빗대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너와 지붕을 한 그늘 막처럼 만든 열린 구조물이 있다. 이 구조물은 쪼갠 너와를 말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지붕에 오르고 남은 너와가 쌓여 있다. 방앗간 채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한 모습으로 내부는 2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한쪽은 디딜방아가 있고 또 한쪽은 농기구를 넣어 두는 쟁기 실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당으로 접어들면 경사진 면을 평편하게 만들기 위해 축대를 쌓아 집을 지었는데, 마당이 ㄷ자 모양이며 지금은 텃밭으로 사용할 만큼 야생초가 자라고 있다. 마당과 안채 사이에 난 길은 별도로 두고 집을 평면으로 만들기 위해 안채 앞과 좌측에는 지면의 높이만큼 돌을 쌓았다.
 
▲ 김진호 너와집 전경     


집은 정면으로 보았을 때 3칸으로 구분되며 중간 칸은 대문을 두어 안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고 좌측으로 부엌간을 두고 우측에는 정낭과 외양간을 두었다. 벽은 모두 판자를 이용하였고 기둥은 대부분 사각기둥을 사용하였으나 서까래는 나무를 잘 다듬은 원형의 나무를 사용하였다. 좌측 벽면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두 짝의 판문을 달았고 안방으로 통하는 띠살문 한 짝을 달았다. 벽은 부엌문의 바깥쪽은 판벽을 하였고 안쪽으로는 흙벽을 하고 좌우에 실내를 밝게 하기  위해 작은 눈곱 창 하나씩 내었다. 건물의 뒤쪽 좌측 벽은 흙벽으로 하고 문을 내지 않았고, 중간 칸은 두 짝의 판문을, 우측 벽에는 띠살문을 하나 달았다. 또한, 좌우간 뒤에는 통나무 안쪽에 구멍을 파서 만든 굴뚝 하나씩 세웠다. 건물의 우측 벽은 4칸으로 구분되며, 앞쪽으로 2칸은 판벽을 하고 칸마다 판문을 달아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안쪽 사랑방채 1칸은 흙벽을 하고 띠살문을 크기가 다리게 각각 하나씩 달았고, 안쪽 끝에는 사랑방 내부를 밝게 하려고 눈곱 창을 하나 달았다. 집의 용마루를 기준으로 하면 집의 모양이 뒤쪽은 짧지만, 앞쪽에는 좌우로 외양간, 정낭이 붙어 있어 전체 길이의 약 1/3이 더 길게 나와 있다. 실내를 보려고 하였으나 굳게 자며 있어서 문틈으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누우면 하늘이 엿보이고, 불을 때면 연기가 틈으로 빠져나가 마치 불이 난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 다. 여름에는 엉성해 보이는 틈이 있어 시원하고 겨울이면 눈에 덮여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비가 내려도 나무가 습기를 머금어 빗물이 새지 않는다. 그래서 너와를 만들 때는 반드시 톱이 아닌 도끼를 사용해야 한다. 톱을 사용하려면 나무의 섬유질이 파괴돼 빗물이 샌다고 한다. 지붕의 너와는 산만해 보이지만, 아래, 중간, 위가 서로 겹쳐져 빗물이 새지 않도록 잘 처리되었고 그 위에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긴 나무로 2단으로 고정키고, 곳곳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았다. 용마루에는 굴피를 여러 겹으로 올리고  긴 나무와 돌로 고정했다. 지붕의 합작 부분은 작은 삼각형 모양 구멍을 내어(까치구멍) 집 안의 연기를 밖으로 뿜게 했다. 건물의 내부의 안방에는 코클을 설치하였고, 외양간의 부엌 사이 공간은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꾸몄으며 한쪽에 불씨를 보관하던 시설(화티)이 있다.
 
▲ 김진호 너와집 사랑채     


이곳에서 마을 삼거리 방향으로 약 2km에 이르면 동남향을 하는 또 한 채의 너와집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같은 형태이며, 마찬가지로 경사진 터를 평지로 만들어 집을 짓기 위해 건물 앞쪽에 담을 쌓고 그사이에 흙을 채워 집터를 만들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담장 끝에는 아름드리 감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앞마당은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을 이루며, 정면에는 집안으로 출입하는 대문이 있고 앞면 왼쪽에 외양간과 정낭을 배치하였고, 오른쪽에 부엌을 놓았다. 대문을 들어서 안쪽 트인 공간 중심에 마루가 있는데 마루 왼쪽이 사랑방, 오른쪽 부엌과 접해 있는 방을 안방으로 배치하여 코클을 설치하였다. 외양간의 부엌 사이 공간은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꾸몄으며 부뚜막 옆 한쪽에 진흙으로 불씨를 보관하던 시설(화티)를 만들었다. 전면과 측면 1칸은 판벽을 둘렀고 안방 쪽의 측면은 부엌 쪽은 판벽을 하고 안방이 있는 부분의 두 칸은 흙벽을 하고 띠살문 두 짝을 달았는데 크기가 다르다. 또한, 방의 밝기를 위해 눈곱 창을 하나 냈다. 건물의 뒤쪽은 모두 흙벽을 하고 가운데에 띠살문 하나를 달았다. 굴뚝은 판자로 사각의 통을 만들어 2개를 설치하였다. 건물의 우측 벽은 사랑방의 벽은 흙벽으로 하고 띠살문 한 짝을 달았고 외양간과 정랑 채의 벽은 판벽으로 하였다. 또한, 외양간을. 또한 외양간을 밖에서 드나들 수 있는 판문 두 짝도 달았다. 사랑방 앞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 신리 물레방아     


건물의 지붕은 너와를 정교하게 얹었고 바람에 날리지 못하게 긴 나무를 이용하여 고정하였고 내림 마루나 추녀마루 위에 돌을 올려놓았다. 용마루에는 굴피를 여러 겹을 얹고 그 위에 돌과 긴 나무로 날리지 못하게 고정했다. 지붕의 좌우 합직부분에는 까치구멍을 내어 실내의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 구조이다.
 
▲ 신리 물레방아     


이외에 너와집에서 약 400m 아래에 물레방아가 자리하고, ‘통방아, 싸리로 엮어 만든 뒤 쇠똥을 바르고 그 곁에 다시 보릿겨와 진흙을 섞어 바른 곡물 저장용 항아리 모양의 채독, 피나무 속을 파고 진한 풀을 이겨 발라서 보온성과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김칫독, 눈이 쌓였을 때 짚신 위에 덧신기 위해 만든 설피, 산짐승을 잡기 위한 창, 물건을 담아 나르는 주루막, 나무나 작물을 지고 다니던 지게 등이 남아 있다.
 
두 채의 너와집은 폐쇄구조임에도 남녀의 내외공간인 사랑방과 안방, 부엌과 외양간, 정낭, 마루, 쪽마루에 이르기까지 마련한 것은 실내 공간을 교묘한 칸나누기와 출입문을 다양화한 것은 화전민으로서 삶을 이어가는데 최적의 방법이며 그들의 슬기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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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27 [09:50]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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