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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중원 대륙의 황제국이었다!”
황순종 『매국사학의 18가지 거짓말』의 저자
 
황순종 기사입력  2018/02/12 [12:55]

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46) “백제는 중원 대륙의 황제국이었다!”
▲ 황순종 『매국사학의 18가지 거짓말』의 저자  

지난 호에서 강성했던 고구려의 자취를 보았으므로 이제 백제를 보기로 하겠다.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은 ‘고구려에서 패수와 대수를 건너 남하하여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니 그곳이 매국사학에서 주장하는 한강 유역이 아니라 대륙이었음은 이미 보았다. 위례성이 어딘지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하남’이라 했으므로 황하의 남쪽 어딘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위나라 기병 수십만을 물리쳤다
백제가 강성해지자 중국 남북조시대 북조의 위(魏)나라에서 488년에 백제에 쳐들어왔으나 패했다는 기록이 남조의 제(齊)나라 역사인 『남제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북위 오랑캐가 또다시 기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경계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군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 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여기의 모대는 백제 동성왕의 이름이다.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북위의 수십만 기병이 배로 서해를 건너와야 하는데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장군들에게 왕고 후로 봉한 황제국이었다!
그리고 이때 북위를 크게 격파한 4명의 장군을 왕과 후로 봉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장군 사법명 등 3명을 도한왕·아착왕·매로왕으로 봉하고, 장군 목간나를 불사후로 봉했다’고 하였다. 또 백제의 장군들을 광양·조선·대방·광릉·청하·낙랑·성양 등 7개 군의 태수로 봉했다고 하였는데, 이들 군의 위치에 대하여 윤내현 교수는 ‘허베이성 롼허 유역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산둥성을 거쳐 장쑤(강소)성 동남부에 이른다’고 고증하였다.

이런 내용이 왜 『삼국사기』에는 없는지 알 수 없지만,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 “백제는 병력을 동원하여 제·노·오·월나라 등의 땅을 평정하고 관서를 설치하였으며, 백성들의 호적을 정리하고 땅을 나누어 왕과 제후를 봉하였다.”고 기록하여 백제가 지금 중국 동부를 평정하고 왕·후를 봉한 황제국이었다는 중국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 다행히 『삼국사기』 최치원전에 백제와 고구려가 강대한 나라였다는 사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백제의 전성 시에는 강병이 백만 명이어서 남쪽으로는 오·월나라를 침공하였고, 북쪽으로는 유주와 연·제·노나라 지역을 흔들어서 중국의 큰 두통거리가 되었으며…”

중국의 동북쪽으로부터 동해에 걸친 지역에 고구려와 백제가 자리 잡고 남쪽과 북쪽을 침입하여 세력을 과시했다는 것이니, 반도에 갇힌 고구려와 백제였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백제 땅에 설치한 당나라 도독부가 중원에 있다!
백제가 대륙 국가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더 결정적인 기록은 백제 멸망 후 그 땅을 지배하기 위하여 당나라에서 설치한 5도독부의 이름이다. 즉 웅진·마한·동명·금련·덕안 등의 도독부를 두었는데, 이 지명 중 지금이나 옛 기록에 한반도 서부에 보이는 것은 웅진 하나뿐이지만, 이도 사실은 한반도가 아니라 보하이 서안의 옛 대방군 지역에 있었고, 『대청광여도』에 보면 동명은 산둥성 서부에, 덕안은 후베이(호북)성의 한강 북쪽에 있다. 이렇게 보면 백제가 동북쪽의 산둥 서부로부터 서남쪽의 후베이 지역 일부까지에 걸쳐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런 사실은 당나라의 대당총관 설인귀가 문무왕에게 보낸 서신에 대해 671년 문무왕이 보낸 아래와 같은 답서에서도 입증된다.

“백제의 옛 땅을 모두 돌려주기로 하였었는데, 황하가 아직은 띠 같지 않고 태산이 숫돌과 같지 않아 3·4년 간 한 번 주었다 한 번 빼앗았다 하니 신라 백성들은 모두 실망하여….”

당나라가 백제의 옛 땅을 모두 신라에 돌려주기로 해놓고도, 약속을 어기고 지난 수년간 ‘황하 유역과 산둥의 태산 지역을 주었다 빼앗았다 했다’는 것이다. 이는 허베이·산둥 지역이 백제의 땅이었음을 명쾌하게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당나라가 백제의 땅을 돌려주지 않고 5도독부를 두고 다스리자, 문무왕은 영토 확보를 위해 당나라와 크고 작은 많은 전쟁을 치러 결국 백제 땅을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다. 다음 호에서는 이와 연결하여 백제와 신라의 위치에 대해 추가적으로 서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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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12 [12:55]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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