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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끌어들인 자경전, “꽃담”과 “십장생 굴뚝” 1
정진해
 
정진해 문화재 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02/12 [10:13]

문화재 : 자경전(보물 제809호)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삼청로 37, 경복궁 (세종로)


▲ 자경전     © 정진해

경복궁 자경전 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꽃담과 십장생 굴뚝이다. 경복궁에서 자연의 멋을 살린 아미산과 인공의 멋을 살린 자경전을 둘러싼 담과 굴뚝이다. 자경전을 둘러싼 안과 밖은 갇힌 공간이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고, 사람의 숨결을 느끼도록 하였다. 꽃담과 십장생의 동식물은 주변의 살구나무처럼 세월의 변화를 묶어두고 언제나 늘 현재에 만족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만세문을 나서면 하늘 높이 자라는 살구나무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노랗게 익은 살구나무 열매를 보며 계절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던 자경전의 주인은 봄여름 가을보다 겨울을 의식한 듯하다.

자경전은 경복궁 침전 동쪽에 자리한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고종의 양어머니가 되었던 조대비(신정왕후)를 위하여 1867년에 지은 건물이었지만, 1873년 12월에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을 1876년에 또다시 화마에 사라진 것을 고종 25년(1888)에 재건하였다. 현존하는 침전 가운데 옛 모습을 간직한 유일한 건물이다.

▲ 청연루     © 정진해

44칸의 규모의 건물은 겨울을 위한 공간인 온돌방으로 꾸며진 복안당과 중앙의 전후 툇간의 자경전은 낮에 거처하던 공간을 두었고, 동남쪽의 청연루는 누마루가 돌출되어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연루의 동쪽으로 시녀들이 기거하던 협경당이 연결되어 있다. 자경전 마당 앞에는 행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 여자들이 여닫기 쉽게 가벼운 당판문으로 된 만세문을 달았다. 자경전 후원 북쪽 담과 이어진 굴뚝에는 왕족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십장생무늬가 베풀어졌고, 서쪽 벽돌담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벽돌의 짜 맞춤으로 길상 문자를 수놓았다.

▲ 자경전 꽃담     © 정진해

자경전의 서쪽 담에는 8점의 꽃 그림과 글씨가 수놓았다. 차음 자경전 꽃담은 9점의 꽃 그림이 있었으나 어느 땐가 꽃담을 복원하면서 꽃 그림 한 점이 사라지고 지금의 8점의 꽃 그림으로 옛 모습을 지켜오고 있다. 꽃 그림 옆에는 도인화한 한자들을 한 세트로 엮여 있다. 첫 번째 매화 그림 옆에는 봄을 알리는 ‘春’자가 있다. 두 번째는 천도복숭아나무에 그림이며 옆에는 베풀 ‘張’의 글씨가 보이고, 세 번째는 목단 꽃에 나비가 나는 그림으로 글씨는 해 ‘年’의 글씨이다. 네 번째는 석류 그림에 일만 ‘萬’이고, 다섯 번째는 국화꽃에 나비가 날아들며, 글씨가 없으나 복원하기 전에는 해 ‘歲’자가 있었다. 여섯 번째도 국화꽃에 나비가 날아들고 옆에는 굳셀 ‘彊’의 글씨, 일곱 번째는 영산홍에 글씨(?). 여덟 번째는 대나무 그림으로 글씨는 즐거울 ‘樂’ 글자를, 아홉 번째는 지금은 꽃담에 없는 꽃 그림이지만, 꽃 옆에는 일만 ‘萬’ 자의 글씨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하나의 꽃이 없어진 것은 ‘萬’ 자가 중복되었기 때문에 8개의 꽃 그림에 글씨를 넣지 않았나 생각된다.

▲ 자경전 꽃담의 모란 그림     © 정진해

둥근달에 들어간 새 한 마리가 매화나무에 앉아 있다. 매화는 순결한 감각을 지닌 미녀를 상징하고, 천도는 신선이 먹는 신성한 과일로, 예로부터 섣달그믐의 구나(악귀를 쫓는) 행사 때 복숭아 가지로 비를 만들어 잡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었다. 모란은 풍성하고 농염한 모습이 덕스럽고 복이 있는 절세미인에 비유되며, 여러 나무가 어우러져 함께 피어 있는 모습은 화목을 상징하고, 석류는 껍질 속에 알맹이가 소복하고 임신부가 찾는 신맛에 맞으므로 자손의 번성을 의미한다.

▲ 자경전 꽃담의 국화(왼쪽) 영산홍(오른쪽) 그림     © 정진해

꽃에 나비가 찾아드는 모습은 남녀 결합의 의미와 함께 행복을 상징하며, 국화는 맑은 향과 높은 절개를 지닌 꽃으로 고결한 품격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대나무는 매화, 소나무와 더불어 추운 겨울을 꿋꿋하게 견뎌내는 세한삼우, 매난국죽의 하나로 군자의 표상으로 삼았다. 민간에서는 대를 태울 때, 마디 튀는 소리에 잡귀가 놀라 도망간다고 하여 정초에 대를 태우는 풍습이 있었다. 서쪽 담장에 딸린 문 바로 좌측에 그물처럼 육각형의 테두리 안에 다양한 꽃과 나비를 새겨 넣은 석쇠무늬와 꽃은 행복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 자경전 십장생 굴뚝     © 정진해

자경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십장생 굴뚝이다. 십장생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열 가지 사물인 해[日], 달[月], 산(山), 내[川], 대[竹], 소나무[松], 거북[龜], 학(鶴), 사슴[鹿], 불로초(不老草, 芝)라고 말하기도 하고, 해, 돌[石], 물[水], 구름[雲],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십장생 그림     © 정진해

고려 말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에는 “내 집에 십장생이 있는데, 병중의 소원은 장생(長生)뿐이니 차례로 찬사(贊詞)를 붙였는데 운(雲),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지(芝), 구(龜), 학(鶴), 일(日)의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라고 하였으며, 십장생시(十長生 詩)를 남겨 놓았다. 조선 시대에는 세시(歲時)에 세화(歲畵)를 나누어 주었는데, 세화에는 일(日), 월(月), 산(山), 천(川), 죽(竹), 송(松), 구(龜), 학(鶴), 녹(鹿), 지(芝) 등이 그려져 있었고, 항간에서는 이 그림을 문 위나 방 벽에 붙여 놓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 성종 때의 성현(成俔)은 세화를 하사받은 뒤 시를 지어 『허백당집(虛白堂集)』에 남겨 놓았는데 “해달은 늘 비춰 주고 산천은 변함이 없네. 송죽은 눈 서리를 업신여기고 거북과 학은 장수로 태어났네. 흰 사슴은 그 모습 어찌 그리 깨끗한고. 붉은 불로초는 잎이 더욱 기이하네. 십장생의 뜻이 하도 깊으니, 신도 또한 국은을 입었네(日月常照臨 山川不變移 竹松凌雪霰. 龜鶴稟期帥 白鹿形何潔 丹芝葉更奇 長生深有意 臣亦荷恩私).”라 하였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에는 많은 온돌방과 연결된 여러 개의 굴뚝을 모아 하나의 큰 굴뚝을 만들었다. 담에서 한단 앞으로 불쑥 나오게 하고 그 사이에 연기를 뿜어낼 연도를 만들고 그 위에 갓을 쉬운 굴뚝을 완성하였다. 굴뚝은 방 고랑에 남아 있는 필요 없는 연기와 열기를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야 아궁이에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의 열기가 방 구석구석을 따뜻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옥의 굴뚝은 지붕의 처마 끝에 있으며 처마보다 높다. 그러나 자경전의 굴뚝은 건물에서 떨어져 낮게 있으며 앞과 측면에 벽으로 두지 않고 길상의 문양과 십장생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 자경전 십장생 굴뚝 박쥐문     © 정진해

장식된 문양에는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 늘 생각했던 사상을 자연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왔다. 그래서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도 자연물에서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굴뚝의 벽 사이의 공간에 위쪽에는 박쥐 문을 넣고 아래쪽으로 덩굴무늬를 넣어 허전한 공간을 채웠다. 박쥐는 십장생에 속하지 않지만 복익(伏翼), 비서(飛鼠), 선서(仙鼠), 천서(天鼠) 등으로도 불린 동물로,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사가집〔四佳集〕』에 의하면 조선 성종이 임사홍 등에게 박쥐에 대한 글을 지어 올리게 했을 때 박쥐를 군자(君子)에 비유한 예가 있다. 그래도 박쥐의 상징은 복(福)이다. 박쥐의 한자 말인 편복(蝙蝠)의 ‘복’(蝠)이 ‘복’(福) 과 발음이 같은 데서 유래되었다. 반면에 때로 이익에 따라 새 행세를 할 때가 있고 짐승 행세를 할 때가 있다고 하여 기회주의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굴뚝은 어두운 곳이고, 박쥐는 어두운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굴뚝으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다는 의미도 있다.

▲ 십장생 굴뚝의 불가사리문     © 정진해

박쥐 아래에는 덩굴무늬로 상하로 공간을 채웠다. 덩굴무늬는 덩굴식물로 끊임없이 뻗어 나가기 때문에 역경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인내와 끈기를 상징한다. 굴뚝에 덩굴무늬는 불이 꺼지지 않고 연기가 잘 빠져나가라는 의미로 장식하였다. 굴뚝의 정면은 3단으로 구분하였고, 아래에는 코끼리와 비슷한 불가사리를 장식하였다. 불가사리는 맥(貘)이라는 설도 있다. 불가사리는 쇠를 먹으며, 악몽을 물리치고 사기(邪氣)를 쫓는 동물로 여겨왔다. 굴뚝에 불가사리를 아래에 배치한 것은 뜨거운 불이 밖으로 나가 말고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바로 위에는 자연의 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뜨거운 불길은 쇠를 녹일 수 있기 때문에 불가사리를 배치함으로써 자경전의 온돌방은 따뜻한 기운이 언제나 머물러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 십장생 굴뚝의 학문     © 정진해

굴뚝의 중간에는 굴뚝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십장생 무늬를 배치하고 상부에는 불로초를 물고 있는 두 마리의 학과 중간 지점에 나티를 배치하였다. 학은 신약의 풀인 불로초를 물고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오고 있다. 자경전의 주인 조대비의 불로장생을 위한 의미에서 두 마리의 학이 배치하였다.

▲ 십장생 굴뚝의 귀면문     © 정진해

또한, 가운데에 사귀를 쫓는 능력이 있는 귀면을 배치하였다. 이빨을 드러낸 큰 입, 치켜뜬 눈, 큰 코를 가진 형상이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어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잡귀가 애초부터 침입할 엄두를 못 내게 하려는 의도이다. 귀면을 생활공간 속에 배치하는 것 역시 귀신이 인간의 편에서 자유자재한 초능력을 발휘하여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주기를 바라는 뜻이다. 굴뚝으로 타고 들어오는 잡귀의 침입을 막고, 아궁이에서 피어난 불꽃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잡아주는 불가사리의 활약에 이르기까지 이상의 공간을 꿈꾸도록 하였다.

굴뚝은 아궁이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아궁이는 열기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면 굴뚝은 열기를 빼내려고 한다. 연기는 굴뚝을 통해 밖으로 배출시키고 불꽃은 구들장을 대펴야 아궁이와 굴뚝이 편안하다. 그렇지 못하면 아궁이 밖으로 역 피어나는 연기로 인해 불꽃의 기능도 잃게 되고 굴뚝의 기능도 잃게 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아궁이와 고래, 굴뚝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온돌방은 저녁부터 아침이 되기까지 따뜻함을 유지해야 불을 잘 지폈다고 한다. 이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굴뚝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옛사람들은 굴뚝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서양 사람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기 위해 굴뚝으로 들어온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는 굴뚝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귀신이라 하였다. 연기가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형상이 마치 귀신이 몸부림을 치며 날아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굴뚝 귀신이 있다고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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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12 [10:13]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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