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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길 따라 불심 머무르는 곳 “불갑사”
 
정진해 문화재 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01/27 [13:04]

문화재 : 불갑사 사천왕상 (전남유형문화재 제159호)  
           불갑사 대웅전(보물 제830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산8번지


▲ 불갑사 금강문     © 정진해

9월의 꽃무릇 붉은 피를 토하듯 산사의 그늘진 숲에 고만고만 키를 재며 흐드러지게 피는 곳 불갑사를 찾았다. 겨울의 불갑사는 꽃무릇을 이야기하기에 쑥스러워할 정도로 초록빛 붉을 빛 모두 감추고 잿빛에 저 멀리 불갑사 전각에 단청이 대신하고 있다.

봄이면 삐죽삐죽 초록색 잎만 보였다가 팔월이면 초록빛 잎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삐죽하게 줄기 하나가 올라오는 그 순간 등잔 심지에 불을 지핀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무릇이나 상사화를 보며, ‘마음은 하나인데 만날 수 없으니 그리움이 한이 되었나 언젠가 만난다는 기약도 없으니 천추의 한이 되었나’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마음만 하나가 아니고 몸도 하나이면서 일컫는 것은 불갑사의 구성원을 일컫는 것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모두 하나로 시작하여 이웃이 있다는 것을 꽃무릇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봄을 기다리며 걸어보는 불갑사 경내를 둘러본다.

불갑사는 전남 영광군 모악산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 존자가 침류왕 1년에 법성포를 통해 이곳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하고 제불사(諸佛寺)라 하고 훗날 불갑사(佛甲寺)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마라난타가 창건한 절들의 이름에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佛)이 들어 있다. 영광 불갑사와 군산 불지사(佛智寺), 불회사(佛會社)가 바로 마라난타가 세운 절이다. 불갑사 고적기(古蹟記)에 “나제지시(羅濟之始) 한위지간(漢魏之間)”이라고 기록돼 있어, 백제 초기 창건된 사찰임을 증명하고 있다. <불갑사창설유서(佛甲寺創設由緖)〉에도 “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 1년에 마라난타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불갑사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1680년에 중건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6·25 동란 시 빨치산토벌대에 의하여 산내의 암자 등이 불타버렸지만 해불암, 불영대, 전일암, 수도암은 복원되었으나 아직도 복원되지 못하고 터만 남은 곳도 있다. 이밖에 각진국사비(1359)와 여러 점의 부도가 있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거상인 사천왕상이 있다.

▲ 불갑사 사천왕문     © 정진해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만세루, 팔상전, 칠성각, 일광당, 명부전, 요사채 등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금강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흙과 평기와를 이용한 담을 쌓고 그 중심에 금강문을 배치하여 사천왕문과 직선상에 놓였다. 다듬은 돌을 2단을 쌓고 다시 상단은 5단을 쌓은 상화와 층을 지게하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금강문을 두고 바깥쪽의 기둥은 단주를, 안쪽의 두 기둥은 장주를 놓아 건물의 수평을 맞추었다.
금강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 길은 다시 5단의 기단을 쌓고 그 사이에 계단을 두어 천왕문에 이른다. 천왕문 내에는 사천왕이 지켜보고 있다. 큰 사찰로 들어갈 때면 으레 사천왕상과 눈을 맞추고 지나가야 한다. 꼭 필요 때문에 있는 사천왕은 각각 주어진 임무가 주어져 있다.

이 사천왕상은 통일신라 진흥왕 때 (540~574년)) 연기조사가 만든 것이라고 전해진다.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는데, 조선 고종 7년(1870)에 설두대사가 나무배 4척을 동원하여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전해오고 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된 사천왕은 좌우편에 각 2구씩 4구가 배치되어 있다.



▲ 불갑사 사천왕상     © 정진해

사천왕상은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통일신라 초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감은사의 탑과 사리함, 석주, 석등의 표면에까지 조작돼 왔다. 앞에 서면 섬뜩함을 느낄 만큼 역동적인 기용과 무서운 표정을 하는 신장상이다. 신장상의 이름에 따라 문이 정해지는데, 금강문에는 금강역사가 배치되고, 천왕문에는 사천왕이 봉안되지만, 탱화나 벽화 등으로 그려진 것도 있다. 사천왕문이 없는 사찰에는 대문이나 불전의 내외 벽면, 혹은 불상의 외호로써 불보살 탱화의 사방에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석탑의 사면에도 조각해 그 탑을 수호하도록 하였다. 사천왕도는 부석사 조사당의 벽화가 대표적이다.

사천왕은 <불설장아함경>에서부터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신으로, 대승불교가 발달하면서 불교의 외호신으로 등장한다. 사천왕은 처음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천의 명을 받아 수미산 중턱의 사주인 동주, 서주, 남주, 북주를 다스리는 왕으로, 아래로는 팔부중을 거느리고 4주를 수호한다. <다라니경>에 의해 지물이나 형태가 조각되고 그려지는데, 처음 인도에서는 호제천이라 하여 귀족의 모습이었지만 불교가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파되는 동안 차츰 무인상으로 변형이 되었다.

사천왕이 들고 있는 지물은 다소 차이는 있으나 조선 시대 후기 이후 오늘날까지 보편화되면서 정립된 형태는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은 손에 4줄로 된 비파를 들고 있으며,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은 한 손에는 용, 떠 다른 한 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남쪽의 증장천왕은 보검을 들고 있으며,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창과 탑을 들고 있으며, 각기 표정이나 기법이 모두 비슷하다. 사천왕의 세속적인 역할은, 동쪽 지국천왕은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며, 서쪽 광목천왕은 악인에게 고통을 주어 구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남쪽의 증장천왕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풀며, 북쪽의 다문천왕은 어둠 속에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불갑사 만세루     © 정진해

천왕문을 통과하면 또 하나의 누각 건물이 앞을 막는다. 아래층은 기둥만, 위 층에는 창문만 있다. 이 건물이 만세루(萬歲樓)이다.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된 건물로, 언제 이 자리에 있기 시작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있지 않다. 처음 마라난타에 불갑사가 창건될 당시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각진국사가 이곳에 세웠다는 설은 있지만 분명치 않다. 앞면 5칸, 옆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꾸민 만세루는 교육을 위한 강당 건물이다.

대부분의 우각은 절 중심 공간으로 들어갈 때 누 아래로 드나드는 문루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누는 낮은 중층을 이루어 건물의 좌·우측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건물의 위용만큼이나 자연석 큰 돌을 초석으로 하고 원기둥을 세워 위쪽의 공포는 주심포를 짜서 건물 전체를 안정된 모습으로 받치고 있다.

▲ 불갑사 만세루     © 정진해

각 칸의 문짝 중 좌우 두 칸씩은 띠살문을 두 짝씩 달았지만, 가운데 칸은 띠살문 3짝을 달았다. 중심공간인 대웅전 앞에서 보면 만세루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마당에서 장대석으로 2단의 높이에 평면을 이루고 있어 아래쪽에 기둥은 보이지 않고 단층의 건물로 보인다. 또한, 각 칸마다 문짝도 다른데, 좌우 2칸씩은 1단의 청판을 단 빗살문을 각각 3짝씩 달았고, 가운데 칸은 2단의 청판을 한 사분합문을 달았다. 건물 전체에 모로 단청을 하였으며, 창방은 주화문초를 하고 청색과 붉은색의 화반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뒤쪽의 화반은 덩굴무늬를 하여 앞과 뒤의 의미를 달리하였다.

사찰의 강당은 초기에는 대웅전 뒤에 있었으나 고려 이후부터는 대웅전 앞뜰에 설치하였는데, 불갑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건축 수법이 기본 틀에서 벗어난 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 불갑사 대웅전     © 정진해

만세루와 마주 보고 있는 대웅전은 언제 건축된 건물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창건 당시 마라난타가 세운 것이라는 설과 무왕 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있다. 기와 가운데 ‘건륭 29년(乾隆二十九年)’아라고 쓴 것이 발견되어 조선 영조 40년(1764)에 고친 것으로 짐작하고, 그 뒤 융희 3년(1909)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불갑사 대웅전     © 정진해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장대석을 3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방형 주춧돌을 놓고 원기둥을 세워 기초를 마련하였다. 창방 위로 평평한 평방을 두르고 포작(包作)을 싸올렸는데, 공포는 다포계(多包系)이며 안팎의 출목(出目)이 각각 3출목, 2출목이다. 정면 3칸에는 칸마다 3짝 꽃살문을 달았고, 동쪽 벽에도 3칸 모두에 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게 꾸몄다. 대웅전 용마루 중앙에는 귀면보탑이 있다. 다른 사찰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리탑으로 남방불교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불갑사가 백제불교 초전가람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건물 내부 구조는 건물 좌향과 달리 직교적 위치에 네 개의 고주를 세워 북좌남향의 형태로 후불벽을 만들었고 불단과 닫집을 상하로 배치하였다. 불단 위에는 목조대좌를 놓고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좌측에(동쪽) 약사여배불을, 우측에(서쪽) 아미타불을 봉안함으로써 동좌서향의 건물좌향과 북좌남향의 불상좌향이 직교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일반 사찰건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다.

외형적 측면에서 보면 동좌서향의 건물좌향이 정면기능의 역할을 하며, 북좌남향한 삼존불좌향의 남측 문과 북측 문은 측면이 되도록 설계됐다. 이러한 건축물은 정서와 정남, 그리고 정북의 삼면 활용적 특징을 가진 특이한 구조의 건축양식이라 할 수 있다.



▲ 불갑사 대웅전 정면 문     © 정진해

남측 3칸은 3짝의 문을 달았는데, 좌우 칸의 문 3짝 중 가운데 문짝은 빗금강저꽃문을 달고 좌우의 문짝은 소슬민꽃문을 달았고, 가운데 칸의 3문짝 중 좌우의 것은 소슬모란꽃문을 달았고 가운데 문짝은 소슬연꽃문을 달았다. 동쪽 3칸 중 좌우 2분합문은 빗살문을 달았고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칸의 2분합문은 소슬금강저꽃문을 달았다. 서쪽의 3칸 중 좌우칸은 벽을 하고 가운데 칸은 2분합 빗살문을 다는 등 건물 전체 분위기가 매우 화사하다.

▲ 불갑사 대웅전 동쪽면 문     © 정진해

건물 안쪽의 모서리 공포 부분에도 용머리를 장식하고 있고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다. 화려한 무늬와 조각을 새긴 조선 후기 목조 불전 건축으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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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27 [13:04]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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